Vagabon | Vagabon

올뮤직(allmusic.com)에서 배가본(Vagabon)의 디스코그래피를 검색하면 2019년 발매된 음반을 두 건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은 음반 커버와 똑같은 수록곡을 가진 이 두 음반은 사실 한 음반이다. 배가본의 두번째 음반은 원래 [All the Women in Me]라는 이름을 달고 발매될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곧 [Vagabon]으로 이름을 바꾸어 10월 18일 정식발매되었다. 위의 공식 음반 사진에도 ‘All the Women in Me’ 글귀가 찍혀 있는걸 보면 정말 급하게 음반명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카메룬 이민자 가정 출신 뮤지션 레티시아 탐코(Laetitia Tamko)는 이번 음반에서 ‘세상의 모든 여성’과 베가본(방랑자, 떠돌이 등의 의미를 갖는 ‘vagabond’의 의도된 오타로 보여지는)이라는 무대이름을 갖는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작은 해프닝으로부터도 많은 추측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이 음반은, 우선, 음악이 무척 좋기 때문에 계속 듣게 되는 매력이 있다.

전작 [Infinite Worlds]는 단 8곡이 22분의 짧은 시간 안에 수록된, 배가본이라는 뮤지션을 세상에 소개하는 간략한 안내서였다. 아마도 배가본 본인에게는 음악을 통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의미 역시 컸을, 그래서 인디록과 포크를 기반으로 한 로파이하고 성긴 감성의 노래들이 다수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음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던지는 간결하고 묵직한 메시지와 옹골찬 에너지는 인상적이었다. 후속작 [Vagabon]은 일단 더 길고(38분), 형식적으로 훨씬 세련되어졌다. 전작을 발매하고 떠난 투어 여행 중 호텔에서 랩탑을 이용하여 만든 곡들이 주로 실려있다는 정보를 알고 나면 그래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조용한 방에서 헤드폰으로 들으면 좋을 정도의 적당한 포근함과 조용하고 내성적인 보컬, 전자음악의 힘을 상대적으로 많이 빌린 부드러운 편곡 등을 주된 인자로 하고 있다. 가사도 조금 더 자기성찰적이고 사색적이며 은유적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가운데 그 한가운데에 여성으로서의 깊은 자각이 자리잡고 있다. 배가본이 음악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뀌어서 놀란 팬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이 변화를 ‘성장’의 관점에서 읽어내고 싶다. 다음 음반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킬링 트랙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캐치한 싱글컷으로도 손색이 없을 “Water Me Down”은 물론이고 음반을 여는 첫 곡 “Full Moon in Gemini” 등에서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어떤 낭만, 혹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Full Moon in Gemini”는 음반의 마지막에서 뮤지션 모나코(Monako)에 의해 수미쌍응처럼 되풀이되는데, 조금 다른 분위기로 음반을 마무리짓는 과정이 흥미롭다.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은 “Flood”인데, 우선 이정도로 담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놀랐고(또 대견했고), 이 짧은 곡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며 지루한 틈을 1초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제니퍼 리, 크리스 벅 | 겨울왕국 2

다양성.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모아나]와 [코코]에서는 지금까지 만화속 주인공 역할에서 꾸준하게 소외되어 왔던 유색인종과 비백인 문화권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토피아]와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철학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주제의식이 된다. [겨울왕국]은 남자’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인상적이었는데, 안나와 엘사라는 젊은 자매가 전면에 나서는 가운데 남자 캐릭터들은 찌질한 악당이나 충실한 사이드킥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즈니 에니메이션이 대단히 진보적인 사상을 충실하게 실현하는 그런 존재는 아니라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여전히 전 세계의 모든 여자 아이들은 엘사의 여성스러운 흰색 드레스에 열광한다. (물론 [겨울왕국 2]에서는 엘사가 바지를 입는다는 점에서 약간의 발전을 내비치지만, 디즈니의 ‘진보’는 딱 이정도 수준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기도 한다) [코코]와 [인사이드 아웃]이 그토록 찬란하게 펼쳐 놓았던 서사구조의 마지막 지점에는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로의 공손하게 회귀본능이 존재한다. 최근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였던 [토이스토리]는 4편에 이르러 결국 새로운 세상으로의 확장을 이루어내지만, 이 역시 ‘정상’적인 남성 장난감과 여성 장난감 간의 이성적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아주 혁신적인 엔딩은 아니었다.

디즈니는 항상 이 정도의 애매한 성장을 이루어내면서 생존해왔다. 그 성장의 정도가 사회철학, 혹은 사회적 가치의 성장속도보다 느릴 때에는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리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겨울왕국]처럼 이미 공고하게 형성된 새로운 페러다임 – 여성 중심의 서사 – 에 엘사의 목소리와 같은 킬러 컨텐츠를 살짝 끼얹는 방식의 ‘수요 맞춤 전략’이 통할 때에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셈이다. [겨울왕국 2]는 약간 뒤따라 가는 느낌이다. 여전히 엘사는 압도적이고 안나는 진취적이며, 남자 캐릭터는 수동적이다. 개그를 담당하는 캐릭터들은 마치 그렇게 태어나기라도 한 것 마냥 웃기는 데에만 집중한다. 결말은 누구나 알고 있듯 해피엔딩이지만,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더이상 아닐 것이라는, 누군가는 희생을 할 것이라는 사실도 능히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구도는 이제 식상하다. 새로운 것이 없다. 이 사회는 이미 현실에서 그러한 가치들을 충분히 실현하고 있다. 에니메이션은 상상력이 극대화된, 현재의 사회가 가고 싶어하는 아주 가까운 미래의 세상일 것이고, 그 상상력이 이미 현실이 되어 영화 속에서 구현될 때 우리는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겨울왕국 2]의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 ‘하품 포인트’는 이 영화에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엘사가 다시 한번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드레스를 꺼내 입기 위해서는, 디즈니가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판이 필요한데, 현재의 디즈니에게는 그걸 세상에 역으로 먼저 제시할 정도의 역량은 없어보인다. [겨울왕국 3]는 이 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꽤 많이 움직였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