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Beard | Means to Me

밴드명이 “Long Beard”라고 해서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백인 힙스터 남자를 떠올려서는 안된다. 롱 비어드(Long Beard)는 레슬리 비어(Leslie Bear)라는 젊은 여성 뮤지션의 무대이름이다. 레슬리 비어는 뉴저지에 위치한 럿거스 대학교에 재학 중 이 악기 저 악기 만져보며 음악을 만들어보던 중 루프 페달의 도움을 받아 혼자 녹음 및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2009년부터 학교 주변 펍 등에서 작은 규모의 공연을 시작했다. 로컬샵을 통해 EP 등을 제작, 유통해오다 2015년 정식으로 레이블을 통해 데뷔 음반 [Sleepwalker]를 발표했고, 올해 새로운 프로듀서로 크레이그 헨드릭스(Craig Hendrix)를 영입하여 두번째 음반 [Means to Me]를 내놓았다. 크레이그 헨드릭스가 누군고 하니,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멤버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미쉘 자우너와는 그녀의 필라델피아 시절 밴드 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부터 함께 한 그녀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 중 한 명이다. 헨드릭스가 함께 작업한 또다른 뮤지션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은 스네일 메일(Snail Mail)이 있다. 굳이 프로듀서 때문에 자우너를 언급한 것은 아니고, 롱 비어드가 직접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의 투어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쨌든 롱 비어드의 음악을 들으며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와 스네일 메일을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몽환적인 목소리와 리버브를 잔뜩 먹인 기타사운드가 주도하는 사운드 뿐 아니라 음반을 관통하는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가사와 음반의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잘 지켜나가는 좋은 흐름의 측면에서도 최근 각광 받는 여성 로파이-드림팝 뮤지션들과의 접점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2019년에 등장한 꽤 좋은 드림팝 음반인데,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아시안-어메리칸-여성 인디 뮤지션 계열로도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종적 뿌리가 어디인지는 아무리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다)

첫번째 음반을 발표하고 신나게 투어를 돌고 난 후, 레슬리 비어는 다시 고향인 뉴저지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취직도 하는 등 자리를 잡는 듯 했던 그녀에게 친구들이 물었다고 한다. “‘집’이 뭔데?” 오랫동안 익숙하고 안락한 장소였던 곳이 어느 순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 느껴지는 쓸쓸함의 정서가 롱 비어드의 새 앨범 [Means to Me]의 테마를 관통하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함께 놀던 친한 친구가 성인이 된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처럼, 고향이라 불렀던 장소가 더이상 과거와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지 못할 때, 고향을 다시 찾은 여행객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레슬리 비어가 낮게 읊조리는 노래는 과거의 친밀함과 현재의 쓸쓸함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노스텔지아적 감정의 파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노래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 정서를 청각적으로 재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2019년에도 이런 느낌의 인디 음악이 계속 나오는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다. 당연히 어떤 노래는 좋고 어떤 노래는 조금 빈틈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편차가 크지 않아 음반을 몇 번 반복해서 듣는다 해도 크게 지루함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슈게이징 특유의 몰아치는 느낌이 서정적인 멜로디와 썩 좋은 호흡을 보여주는 “Sweetheart”와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멜랑꼴리한 정서를 좋은 기타솔로와 함께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Means to Me”다.

Big Thief | Two Hands

아무리 활동이 왕성한 뮤지션이라 해도 한 해에 두 장의 정규음반을, 그것도 오직 다섯달의 시차만을 두고 발매한 전례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두 장의 음반이, 그 해에 발매된 모든 대중음악 음반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음반 두 장 중 두 장이라면, 이와 비슷한 전례는 아마 대중음악사에서 찾아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어려운 일을 빅 띠프(Big Thief)가 해냈다. 지난 봄 역작 [U.F.O.F.]를 발매하며 사실상 올해의 음반 논쟁을 끝내버렸던 밴드는 2019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작 [Two Hands]를 발매하며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두 장 중 무엇이 더 뛰어난 음반인지 논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단지 평론가들에게 남은 작업은 이 두 장의 음반이 2010년대 인디음악씬에서 차지하게 될 의미를 고찰하는 일일 것이다.

전작 [U.F.O.F.]는 빅 띠프가 4AD와 계약하고 내놓은 첫번째 음반이며, 회사가 위치해 있는 시애틀의 한적한 야외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에이드리앤 렌커와 친구들은 뜻밖에도 그 해 여름을 섭씨 100도가 넘는 텍사스의 엘파소에서 보냈다. 펄펄 끓는 그 곳에서 새로운 노래들을 녹음했는데, 전작을 함께 만든 이들을 그대로 데리고 갔다는 점이 이채롭다. 어쨌든 그 결과물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전작과 굳이 비교를 하자면, 물론 변화의 기운은 느껴진다. 먼저 사운드 면에서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단단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렌커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 역시 각자 활발한 솔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바, 각 멤버의 ‘폼’이 최고조에 다다른 인상을 받는다. 모든 곡에서 합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느낌이고,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몇몇 곡에서의 합주 부분은 이 밴드의 전성기가 여기라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렌커의 작사능력 역시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간 듯 한데, 과거의 경험을 묘사하고 내적으로 삼키는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일반적인 이슈에 대해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한다. 전작들이 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드러내면서 정서적 공감을 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쪽이었다면 이번 음반은 처음부터 ‘나와 너, 우리’의 ‘지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물론 “Shoulders”처럼 여전히 렌커의 기억을 더듬어나가며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노래도 있다) 덕분에 단단한 사운드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훨씬 대담해졌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담대해졌다고 해야 하나. 차분해진 느낌도 들고. 참, 음반에 수록된 거의 모든 노래는 라이브 연주로 한번에 녹음되었으며 덧씌우는 작업을 최소화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다.

음반에 있는 모든 노래가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에 어느 한 곡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조용히 음반을 여는 곡 “Rock and Sing”을 지나 “Forgotten Eyes”에 도착하면 비로소 빅 띠프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The Toy”와 음반 타이틀곡 “Two Hands”가 음반의 첫번째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데, 따로 덧붙일 필요 없이 그저 아름다운 뿐이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제발 영원히 이 노래가 끝나지 않기만을 바라게 된다. 이건 뒤에 이어지는 “Those Girls”와 “Shoulders”도 마찬가지다. 버릴 부분이 1초도 없다. 개인적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노래는 “Not”이다. 날카롭게 울부짖는 렌커의 목소리와 그를 떠받치는 코러스와 밴드의 연주가 감정을 고조시킨 뒤 노래의 3분 즈음부터 기타솔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 순간 음악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 예컨대 나의 숨소리조차 미워지게 될 정도로 음악적으로 압도당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아마도 [NPR All Music Considered]의 밥 보일린이 이 노래를 자신의 쇼에서 틀었다면 노래가 끝난 후 “…whoa!”하고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올해 최고의 노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파괴적인 걸작 뒤에 이어지는 “Wolf”에서 우리는 올해 가장 아름다운 포크 넘버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음반은 빅 띠프가 더이상 렌커 혼자 이끌어나가는 밴드가 아니며, 멤버 모두의 음악적 세계가 매우 깊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성장담이다. 올해의 음반을 발표한 밴드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친 일이다. 죽기 전 빅 띠프의 공연을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