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ater-Kinney | The Center Won't Hold

슬리터-키니(Sleater-Kinney)의 2019년 음반 [The Center Won’t Hold]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인트 빈센트(St.Vincent)가 프로듀스했다. 1995년부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물론 중간에 10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전설적인 밴드 슬리터-키니와 2010년대 인디씬에서 가장 핫한 뮤지션 세인트 빈센트의 협업이라 하면 일단 가슴이 뛰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결과물은 너무나 일방적인 세인트 빈센트의 음악이라 실망스러운 마음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다. 노이지한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그런지 음악의 한복판에 섰던 슬리터-키니의 음악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현시대에서 가장 독창적인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 세인트 빈센트의 가슴도 많이 뛰었겠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대선배가 쌓아올린 과거의 유산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개별적인 노래들은 무척 매력적이다. 최근 세인트 빈센트의 음악세계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레이저칼같은 기타사운드와 댄서블한 리듬, 귀를 찢는 듯한 보컬 등이 그대로 [The Center Won’t Hold]에 담겨 있다. “Bad Dance”같은 트랙은 2019년 최고의 싱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섹시하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슬리터-키니의 2019년 음반으로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라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거의 아무것도”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프로듀서의 영향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섹시한 음반을 뽑아낸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교훈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의 사례에서 이미 명백히 증면된 바다. 물론 [Black Parade] 이후 거의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사라져간 젊은 밴드와 25년 이상 음악을 해온 관록의 밴드를 액면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슬리터-키니가 세인트 빈센트에 잠식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이 음반은 참 좋다. 잘 만든 음반이다. 다만 세인트 빈센트의 B-Side 작업물처럼 느껴질 뿐이지만.

Angel Olsen | All Mirrors

엔젤 올슨(Angel Olsen)의 커리어는 막힘이 없다. [Burn Your Fire for No Witness]와 [My Women]으로 인디록 장르에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한 그녀가 2019년에 발매한 [All Mirrors]에서 가고자 하는 길은 그 방향성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존재한다. 조금 더 웅장하게, 조금 더 화려하게, 조금 더 다층적인 차원으로. 전작에서 약간의 신서사이저 음향을 도입하기 시작한 올슨은 이번 음반에서 신스 음악과 오케스트레이션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My Women]까지 간직하고 있던 초창기 로-파이한 정체성은 이번 음반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My Women]이 거친 입자의 필름 카메라로 찍은 헨드 헬드 인디영화에 가까웠다면, [All Mirrors]는 디지털 카메라로 깔끔하게 촬영한 촬영한 시대극 – 많은 엑스트라와 화려한 의상이 함께 하는 – 느낌이 든다.

음반 전체적으로 엔젤 올슨이 가진 아티스트로서의 야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몇몇 노래는 그 욕망을 충실히 실현시켜주는 좋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상당히 느린 속도의 점층적 구조로 쌓아올린 “Lark”와 오케스트레이션을 주된 도구로 활용한 “Tonight”은 올슨 음악의 외형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의 “Shut Up Kiss Me”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올슨만의 재기발랄하고 담대한 트랙이 발견되지 않아 아쉬움이 느껴진다. 후기를 보면 원래 하나의 노래를 상이한 버전으로 두 번 녹음하여 더블 앨범으로 발매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녹음을 진행하면서 현재의 버전만을 싣기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편곡을 거친 노래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살짝 궁금해진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올해의 음반으로 거론하고 싶어하겠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경로 안에서 안전한 방식을 택하여 화학적인 진화만을 이루어냈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듯 하다.

FKA twigs | Magdalene

남들과 다른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예술가가 어린 시절의 변곡점을 무사히 통과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비로소 완성시켰을 때, 우리는 그가 “브레이크 아웃”하는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한 때 트윅스로 불리운 여자(FKA twigs), 혹은 탈리아 바넷(Tahliah Barnett)은 지금 그러한 순간을 우리에게 드러내보이고 있다. [Magdalene]은 그녀의 음악세계가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 첫번째 음반이자 아마도 2019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음반으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 개인적으로 [LP1]이 더 훌륭한 음반이라고 생각하지만, [Magdalene]은 트윅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비로소 대중의 기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분명 유의미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트윅스가 음반 단위로 평가되거나 소비되는 방식이 그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데, 그 이유는 뛰어난 음악가임과 동시에 뛰어난 안무가, 뛰어난 스토리텔러, 혹은 독보적인 페미니스트이기도 한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반을 그냥 플레이시키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다층적인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윅스가 구현하는 섹슈얼리티는 음향으로, 멜로디로, 그녀의 춤으로, 의상으로, 가사로, 혹은 특유의 분위기 그 자체로 청자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조히즘과 페미니즘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트윅스라는 몸뚱아리 안에서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이 신비롭게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데, 이건 단순히 헤드폰을 끼고 음반을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서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존하는 대중적인 설득력을 가진 음악가 중 가장 진보적이며, 또한 가장 도전적이다.

Vagabon | Vagabon

올뮤직(allmusic.com)에서 배가본(Vagabon)의 디스코그래피를 검색하면 2019년 발매된 음반을 두 건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은 음반 커버와 똑같은 수록곡을 가진 이 두 음반은 사실 한 음반이다. 배가본의 두번째 음반은 원래 [All the Women in Me]라는 이름을 달고 발매될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곧 [Vagabon]으로 이름을 바꾸어 10월 18일 정식발매되었다. 위의 공식 음반 사진에도 ‘All the Women in Me’ 글귀가 찍혀 있는걸 보면 정말 급하게 음반명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카메룬 이민자 가정 출신 뮤지션 레티시아 탐코(Laetitia Tamko)는 이번 음반에서 ‘세상의 모든 여성’과 베가본(방랑자, 떠돌이 등의 의미를 갖는 ‘vagabond’의 의도된 오타로 보여지는)이라는 무대이름을 갖는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작은 해프닝으로부터도 많은 추측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이 음반은, 우선, 음악이 무척 좋기 때문에 계속 듣게 되는 매력이 있다.

전작 [Infinite Worlds]는 단 8곡이 22분의 짧은 시간 안에 수록된, 배가본이라는 뮤지션을 세상에 소개하는 간략한 안내서였다. 아마도 배가본 본인에게는 음악을 통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의미 역시 컸을, 그래서 인디록과 포크를 기반으로 한 로파이하고 성긴 감성의 노래들이 다수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음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던지는 간결하고 묵직한 메시지와 옹골찬 에너지는 인상적이었다. 후속작 [Vagabon]은 일단 더 길고(38분), 형식적으로 훨씬 세련되어졌다. 전작을 발매하고 떠난 투어 여행 중 호텔에서 랩탑을 이용하여 만든 곡들이 주로 실려있다는 정보를 알고 나면 그래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조용한 방에서 헤드폰으로 들으면 좋을 정도의 적당한 포근함과 조용하고 내성적인 보컬, 전자음악의 힘을 상대적으로 많이 빌린 부드러운 편곡 등을 주된 인자로 하고 있다. 가사도 조금 더 자기성찰적이고 사색적이며 은유적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가운데 그 한가운데에 여성으로서의 깊은 자각이 자리잡고 있다. 배가본이 음악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뀌어서 놀란 팬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이 변화를 ‘성장’의 관점에서 읽어내고 싶다. 다음 음반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킬링 트랙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캐치한 싱글컷으로도 손색이 없을 “Water Me Down”은 물론이고 음반을 여는 첫 곡 “Full Moon in Gemini” 등에서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어떤 낭만, 혹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Full Moon in Gemini”는 음반의 마지막에서 뮤지션 모나코(Monako)에 의해 수미쌍응처럼 되풀이되는데, 조금 다른 분위기로 음반을 마무리짓는 과정이 흥미롭다.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은 “Flood”인데, 우선 이정도로 담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놀랐고(또 대견했고), 이 짧은 곡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며 지루한 틈을 1초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Nick Cave and the Bad Seeds | Ghosteen

닉 케이브는 항상 좋은 음악을 낸다. 지난 40여년 간 항상 그래왔다. 닉 케이브를 전혀 듣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닉 케이브의 음악을 듣기 시작하다 중도에 관두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런 경우다. 닉 케이브의 이름을 기억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최초로 구입한 음반은 2001년작 [No More Shall We Part]였다. [Murder Ballads], [Let Love In], [The Good Sun]같은 초-중기 걸작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거의 모든 음반을 구입해 듣고 있다. 그리고 단 한번도 실망하지 않았다. 2019년에 발매된 17번째 음반 [Ghosteen]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이 음반이 올해의 음반 목록에 들어갈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부터 미리 기록해두고 시작해야겠다. 이 음반은 그냥 ‘죽이게’ 좋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들이 참 많다.

3년 전 발매된 [Skeleton Tree]는 닉 케이브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맞물려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이 음반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들이 아들의 죽음 이전에 쓰여졌고, 오직 몇몇 부분만이 음반의 마지막 녹음 일정 당시 닉 케이브에 의해 즉흥적으로 수정되었을 뿐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음반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연결짓고 싶어한다. 2017년 투어가 끝난 후 닉 케이브는 곡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 우리가 보통 닉 케이브의 천재성만을 기억하느라 잊고 있던 – ‘The Bad Seeds’의 한 축을 담당한 키보디스트 콘웨이 새비지(Conway Savage)가 뇌종양 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1990년부터 닉 케이브와 함께 한 오래된 동료였는데(아마 동료 이상의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암 선고를 받고 1년 뒤 숨을 거두었다. 이후 다시 시작된 닉 케이브의 작업의 결과물로 탄생된 [Ghosteen]은 (당연히) 콘웨이 새비지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니까 죽음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 닉 케이브의 최근 작업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Skeleton Tree]보다는 [Ghosteen]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음반은 밴드 역사에서 약 15년만에 처음으로 더블 음반으로 기획되었다. 첫번째 음반에는 총 여덟곡이 실려 있는데 닉 케이브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자식들(the Children)”의 노래이고, 음반의 두번째 장에 실린 세 곡은 “부모들(the Parents)”의 노래에 해당한다고 한다. 음반에 실린 노래들은 전작들과 달리 무척 정적이다. 앰비언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신디사이저와 키보드가 음악을 주도하고 드럼과 베이스는 보조를 맞추는 정도에 그친다. 바리톤에 가까웠던 닉 케이브는 팔세토 창법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낭독(spoken words)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극적인 부분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물론 미치도록 아름다운 순간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닉 케이브의 음악의 핵심으로 남아있다. “Bright Horses”를 듣고 가슴이 울리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40년 가깝게 활동을 지속해온 뮤지션이 “Galleon Ship”같은 젊디 젊은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Night Raid”가 선사하는 따뜻함은 전과 달라진 닉 케이브 음악만이 주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가사 역시 음악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방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각 노래마다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던 닉 케이브의 작사법은 2015년(그러니까 아들이 죽던 해)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는데, “하나의 직선 위에 마치 이야기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오스에 가깝다”는 닉 케이브의 말처럼 가사는 분절적이고 조금 더 은유적이며 표현은 대담해졌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닉 케이브는 너무 올드하고, 나랑은 잘 맞지 않아. 선뜻 내키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번 빠지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음악이 닉 케이브이고, 나는 지금 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엉뚱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봤다. 닉 케이브가 일본에 태어났다면? 아마 류이치 사카모토가 되어 있을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호주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닉 케이브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둘이 공통분모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이 공유하는 음악적, 미적 요소가 꽤 많다고 생각한다. 하나만 예로 들면 신디사이저에 대한 깊은 이해? 쓸데 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만큼 이 음반에 대해 계속 떠들고 싶다. [Ghosteen]은 너무 좋은 음반이다.

Long Beard | Means to Me

밴드명이 “Long Beard”라고 해서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백인 힙스터 남자를 떠올려서는 안된다. 롱 비어드(Long Beard)는 레슬리 비어(Leslie Bear)라는 젊은 여성 뮤지션의 무대이름이다. 레슬리 비어는 뉴저지에 위치한 럿거스 대학교에 재학 중 이 악기 저 악기 만져보며 음악을 만들어보던 중 루프 페달의 도움을 받아 혼자 녹음 및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2009년부터 학교 주변 펍 등에서 작은 규모의 공연을 시작했다. 로컬샵을 통해 EP 등을 제작, 유통해오다 2015년 정식으로 레이블을 통해 데뷔 음반 [Sleepwalker]를 발표했고, 올해 새로운 프로듀서로 크레이그 헨드릭스(Craig Hendrix)를 영입하여 두번째 음반 [Means to Me]를 내놓았다. 크레이그 헨드릭스가 누군고 하니,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멤버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미쉘 자우너와는 그녀의 필라델피아 시절 밴드 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부터 함께 한 그녀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 중 한 명이다. 헨드릭스가 함께 작업한 또다른 뮤지션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은 스네일 메일(Snail Mail)이 있다. 굳이 프로듀서 때문에 자우너를 언급한 것은 아니고, 롱 비어드가 직접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의 투어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쨌든 롱 비어드의 음악을 들으며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와 스네일 메일을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몽환적인 목소리와 리버브를 잔뜩 먹인 기타사운드가 주도하는 사운드 뿐 아니라 음반을 관통하는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가사와 음반의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잘 지켜나가는 좋은 흐름의 측면에서도 최근 각광 받는 여성 로파이-드림팝 뮤지션들과의 접점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2019년에 등장한 꽤 좋은 드림팝 음반인데,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아시안-어메리칸-여성 인디 뮤지션 계열로도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종적 뿌리가 어디인지는 아무리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다)

첫번째 음반을 발표하고 신나게 투어를 돌고 난 후, 레슬리 비어는 다시 고향인 뉴저지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취직도 하는 등 자리를 잡는 듯 했던 그녀에게 친구들이 물었다고 한다. “‘집’이 뭔데?” 오랫동안 익숙하고 안락한 장소였던 곳이 어느 순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 느껴지는 쓸쓸함의 정서가 롱 비어드의 새 앨범 [Means to Me]의 테마를 관통하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함께 놀던 친한 친구가 성인이 된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처럼, 고향이라 불렀던 장소가 더이상 과거와 같은 안락함을 제공하지 못할 때, 고향을 다시 찾은 여행객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레슬리 비어가 낮게 읊조리는 노래는 과거의 친밀함과 현재의 쓸쓸함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노스텔지아적 감정의 파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노래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 정서를 청각적으로 재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2019년에도 이런 느낌의 인디 음악이 계속 나오는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다. 당연히 어떤 노래는 좋고 어떤 노래는 조금 빈틈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편차가 크지 않아 음반을 몇 번 반복해서 듣는다 해도 크게 지루함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슈게이징 특유의 몰아치는 느낌이 서정적인 멜로디와 썩 좋은 호흡을 보여주는 “Sweetheart”와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멜랑꼴리한 정서를 좋은 기타솔로와 함께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Means to Me”다.

Big Thief | Two Hands

아무리 활동이 왕성한 뮤지션이라 해도 한 해에 두 장의 정규음반을, 그것도 오직 다섯달의 시차만을 두고 발매한 전례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두 장의 음반이, 그 해에 발매된 모든 대중음악 음반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음반 두 장 중 두 장이라면, 이와 비슷한 전례는 아마 대중음악사에서 찾아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어려운 일을 빅 띠프(Big Thief)가 해냈다. 지난 봄 역작 [U.F.O.F.]를 발매하며 사실상 올해의 음반 논쟁을 끝내버렸던 밴드는 2019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작 [Two Hands]를 발매하며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두 장 중 무엇이 더 뛰어난 음반인지 논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단지 평론가들에게 남은 작업은 이 두 장의 음반이 2010년대 인디음악씬에서 차지하게 될 의미를 고찰하는 일일 것이다.

전작 [U.F.O.F.]는 빅 띠프가 4AD와 계약하고 내놓은 첫번째 음반이며, 회사가 위치해 있는 시애틀의 한적한 야외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에이드리앤 렌커와 친구들은 뜻밖에도 그 해 여름을 섭씨 100도가 넘는 텍사스의 엘파소에서 보냈다. 펄펄 끓는 그 곳에서 새로운 노래들을 녹음했는데, 전작을 함께 만든 이들을 그대로 데리고 갔다는 점이 이채롭다. 어쨌든 그 결과물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전작과 굳이 비교를 하자면, 물론 변화의 기운은 느껴진다. 먼저 사운드 면에서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단단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렌커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 역시 각자 활발한 솔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바, 각 멤버의 ‘폼’이 최고조에 다다른 인상을 받는다. 모든 곡에서 합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느낌이고,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몇몇 곡에서의 합주 부분은 이 밴드의 전성기가 여기라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렌커의 작사능력 역시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간 듯 한데, 과거의 경험을 묘사하고 내적으로 삼키는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일반적인 이슈에 대해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한다. 전작들이 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드러내면서 정서적 공감을 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쪽이었다면 이번 음반은 처음부터 ‘나와 너, 우리’의 ‘지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물론 “Shoulders”처럼 여전히 렌커의 기억을 더듬어나가며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노래도 있다) 덕분에 단단한 사운드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훨씬 대담해졌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담대해졌다고 해야 하나. 차분해진 느낌도 들고. 참, 음반에 수록된 거의 모든 노래는 라이브 연주로 한번에 녹음되었으며 덧씌우는 작업을 최소화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다.

음반에 있는 모든 노래가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에 어느 한 곡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조용히 음반을 여는 곡 “Rock and Sing”을 지나 “Forgotten Eyes”에 도착하면 비로소 빅 띠프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The Toy”와 음반 타이틀곡 “Two Hands”가 음반의 첫번째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데, 따로 덧붙일 필요 없이 그저 아름다운 뿐이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제발 영원히 이 노래가 끝나지 않기만을 바라게 된다. 이건 뒤에 이어지는 “Those Girls”와 “Shoulders”도 마찬가지다. 버릴 부분이 1초도 없다. 개인적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노래는 “Not”이다. 날카롭게 울부짖는 렌커의 목소리와 그를 떠받치는 코러스와 밴드의 연주가 감정을 고조시킨 뒤 노래의 3분 즈음부터 기타솔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 순간 음악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 예컨대 나의 숨소리조차 미워지게 될 정도로 음악적으로 압도당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아마도 [NPR All Music Considered]의 밥 보일린이 이 노래를 자신의 쇼에서 틀었다면 노래가 끝난 후 “…whoa!”하고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올해 최고의 노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파괴적인 걸작 뒤에 이어지는 “Wolf”에서 우리는 올해 가장 아름다운 포크 넘버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음반은 빅 띠프가 더이상 렌커 혼자 이끌어나가는 밴드가 아니며, 멤버 모두의 음악적 세계가 매우 깊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성장담이다. 올해의 음반을 발표한 밴드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친 일이다. 죽기 전 빅 띠프의 공연을 꼭 보고 싶다.

Jay Som | Anak Ko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90년대 중후반 경, 많지 않은 용돈을 매달 쪼개 사 읽었던 음악잡지 [Sub]에 한번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아시아계 인디 뮤지션들에 대한 특집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한국계 박수영이 이끌던 밴드 심(Seam) 정도가 당시 잡지에서 주목하던 대상이었는데, “너무 배고파 먹고 살기 힘들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 우울한 인터뷰 기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인디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미츠키(Mitski)와 제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로 대표되는 아시안-어메리칸 인디록이 당당하게 씬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자신의 음악을 ‘아시아’라는 카테고리에 묶는 것에 동의할지는 모르는 일이나, 백인 일변도에 스패니쉬와 아프리칸-어메리칸이 구색을 맞추는 정도였던 씬의 인종적 구성이 이들에 의해 조금 더 활기찬 다양성을 가지게 된 것만큼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아시아’라는 수식어보다 위 두 뮤지션의 음악적, 사회적 의미를 더 잘 부각시킬 수 있는 단어는 ‘여성’일텐데, 요즘 가장 창의적이고 진보적이며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올해의 음반’을 만든 뮤지션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아시아-여성이라는 미국 내 마이너리티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 자체가 이들로 인해 조금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들과 궤를 같이 하는 뮤지션이 필리핀 이민자 가정 출신 멜리나 두테르테(Melina Duterte)의 무대명 제이 솜(Jay Som)일 것이다. 제이 솜은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멀티-인스트루먼탈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앞서 언급한 미츠키나 미셸 자우너와 음악적 파트너쉽을 넘어서는 단단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여름 즈음 세번째 정규음반 [Anak Ko]를 발매했는데, 전작들에서 드러난 약간의 아쉬움이 말끔히 지워질 정도로 상당한 음악적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반 발매 직전에 발표한 싱글 “Pirouette”는 깜짝 놀랄 정도로 풍성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아름답고 댄서블한 드림팝 노래였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이러한 느낌이 보다 정갈하게 정돈되어 음반을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본연의 매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덕분에 여름부터 가을까지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잘 ‘정돈’되어 있다고 표현한 것은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격이 그리 멀지 않고 음반의 전체적인 흐름이 유기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개별적인 노래가 독립적으로 갖는 응집력 또한 전과 다르게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음반명인 ‘anak ko’는 필리핀어로 ‘my children’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첫 곡 “Superbike”부터 유년시절을 회고하는 가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콕토 트윈스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적 감수성의 기타 사운드와 썩 잘 어울리며 회고적 감수성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두번째 노래 “Peace Out”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에서 제이 솜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멜랑콜리한 멜로디라인이 빛을 발하는, 어쩌면 스매싱 펌킨스가 떠오를 수도 있는 인디록 넘버이고, 아마도 음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일 “Nighttime Drive”에서는 연인(혹은 친구)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밤거리로 차를 몰고 나갈 때의 청량한 느낌을 음악적으로 100% 느낄 수 있다. 홀푸즈에서 절도행위(?)를 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다가도 마냥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릴 수만은 없는 현실을 자각하기도 하는, 이 음반이 전체적으로 담고 있는 ‘달콤쌉사름’한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 음반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을 고르라면 아마도 멜로디 라인과 함께 제이 솜 음악의 창의성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적인 두 요소 중 하나인 기타 사운드일 것이다. 음반의 타이틀곡 “Anak Ko”는 짧은 시간에도 기타를 중심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고 음악의 구조를 완성시켜나가는 제이 솜의 뛰어난 작곡/편곡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그리고 제이 솜의 전작들과 가장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 노래는 아마도 “Crown”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고, (비록 “인디가 이래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만) 미국 인디씬의 현재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타 솔로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이 음반에는 많은 동료 여성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가본(Vagabon)의 래티시아 탐코(Leatitia Tamko)다. 배가본의 이번 신작 역시 이 글에 언급한 미츠키, 제패니즈 브렉퍼스트, 제이 솜과 더불어 넓게 보면 여성-이민자 예술의 한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작품이다.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Bon Iver | i,i

네번째 정규음반 [i,i]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보니베어(Bon Iver), 혹은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의 음악세계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세 장의 음반은 어쩌면 매우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수준에서의 ‘드러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첫번째 음반 [For Emma, Forever Ago]는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인디-포크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300명 정도 규모의 볼더의 폭스 극장(Fox Theatre)에서 단촐한 밴드 구성과 함께 한 버논을 처음 보았을 때 참 단단한 인디음악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가 10년 뒤 전자음악을 할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위스컨신의 작은 숲속에서 나와 빅밴드와 함께 만든 [Bon Iver]는 –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 확장되기 시작한 그의 음악세계가 내딛는 또다른 첫걸음이었는데, 역시 그 자체로 매우 좋은 음반이었고, 당시 우리는 그의 새계가 ‘완성’되었다고 ‘착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만명 규모의 레드락 야외극장(Red Rocks Amphitheatre)에서 저스틴 버논은 확실히 다르게 보였던 것 같다. 포크음악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레벨로 나아갔지만, 어쨌든 여전히 인디의 범주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칸예 웨스트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을 거쳐 그의 세계가 한번 더 확장되기 시작하였고, 3집 [22, a Million]이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소리는 분열되기 시작하였고 가사는 알아듣기 힘들었으며, 실험적인 전자음악의 빈번한 사용만큼이나 음반커버와 노래제목은은 기호처럼 모호하게 느껴졌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4집 [i,i]를 듣고 나서야 그의 세번째 정규음반이 한 극단을 경험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그는 세 번의 꽤 괜찮은 여행을 마친 후, 비로소 그의 음악세계의 한 절정을 여기 4집에서 풀어놓았다. 물론 지난 세 번의 음악여행 모두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저스틴 버논이라는 희대의 아티스트가 걸어온 길을 기록한 인디-영웅적인 성장담의 한 챕터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다.

밴드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집부터 스튜디오 작업을 늘 함께 해온 션 케이시(드럼, 키보드)와 매튜 맥커핸(드럼, 베이스)이 이번에도 음반작업에 참여해 보니베어 사운드의 핵심 중 하나인 더블-드러머 시스템을 형성했고, 2집부터 밴드 사운드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섹소폰은 3집에 이어 이번에도 마이클 루이스가 연주했다. 또한 이들을 포함해 총 여섯명이 보컬 작업에 참여했다. 스튜디오 작업에 참여한 멤버 구성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저스틴 버논의 음악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요소 – 겹겹이 쌓인 보컬 층위, 관악기의 사용, 더블-드러머를 동원한 리듬파트의 강조 – 는 2집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3집부터 확연하게 달라진 점으로 많은 이들이 전자음악의 도입과 그로 인해 보니베어의 장르가 달라졌음을 지적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음악에서 포크의 냄새를 맡는다. 여전히 쓸쓸한 위스컨신의 작은 동네 골목이 떠오른다. 보니베어의 장르는 변화하거나 옮겨간 것이 아니라 확장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고, 확장되었다기 보다는 음악적 핵심요소는 그대로 간직한 채 그들만의 장르를 서서히 조립하고 쌓아올려 만들어온 것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오히려 인디포크부터 전자음악까지, 상이한 형식 안에서도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꼽는 1집과 2~4집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상징, 혹은 기호체계의 변화를 들고 싶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사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아니, 더이상 그가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음악에 많은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 있지만, 영어의 문장구조 속에서 체계적으로 그 내용을 표현하기 보다는 (난해한) 음반 커버와 (더 난해한) 노래 제목, 그리고 분절적이고 상징적인 기호체계로 구성된 음악구조를 통해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서 오히려 최근의 음악작업 방식이 더 마음에 들고, 조금 더 완성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보니베어의 음악은 확고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비로소 버논의 스토리라인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편협한 장르구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레벨로 올라간 것이다. 비슷한 부류로 묶을 수 있는 아티스트로는 라디오헤드와 뷰욕이 있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그냥 라디오헤드의 음악이고, 이들 외에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이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뷰욕도 마찬가지다. 이제 보니베어도 그런 아티스트가 됐다. 이제부터는 보니베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세상이 펼쳐지는 셈이다.

Jake Xerxes Fussell | Out of Sight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를 배경으로 활동 중인 포크 음악가 제이크 설서스 퍼셀(Jake Xerxes Fussell)이 2015년 지역 음반사(Paradise of Bachelor)를 통해 발매한 동명의 첫번째 정규음반을 무척 좋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뒤이은 2017년작([What in the Natural World])은 건너 뛰었고, 2년 주기로 올해 발표한 세번째 음반 [Out of Sight]에서 그의 음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퍼셀의 음악은 아메리카나 포크, 혹은 미국 남부 전통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니, “뿌리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미국 남부음악의 정체성을 온 몸에 뒤집어 쓰고 있는 형국이다. 그의 아버지는 민속학자이자 사진가였다. 노스캐롤라이나 더햄에서 태어난 퍼셀은 여느 고고학자/인류학자/민속학자의 가족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탐구활동을 따라 미 알라바마부터 조지아까지 남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다. 아버지가 기록으로 남긴 미국 남부의 다양한 생활상은 퍼셀 음악의 원천이 되었다. 피치포크는 이러한 퍼셀의 음악적 자양분을 문제삼아 그의 음악이 “진짜배기(authentic)가 아니라”고 비판하지만, 베이루트(Beirut)가 이미 그런 비판의 차원을 넘어선 집시-어메리카나 음악을 선보이듯, 미 남부지역에서 평생을 보낸 퍼셀이 젊은 나이에 관찰을 통해 남부 포크음악을 형상화했다는 이유로 정체성 비판을 하는 것은 동의받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아무튼, 퍼셀의 음악적 동반자는 기타리스트 윌리엄 타일러(William Tyler)라 할 수 있는데, 현재 퍼셀 음악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은 명상적이고 실험적인 슬라이드 기타 사운드(라이 쿠더의 음악이 떠오른다)를 함께 완성했다.

[Out of Sight]는 미 남부의 전통을 아름답게 묘사한 음반이다. 노래의 제목으로 남부지역의 고유한 지명(“The River St.Johns”, “Winnsboro Cotton Mill Blues”)을 따오거나 남부지역 특유의 여유롭고 낙천적인 생활상을 담아낸 노래를 부르거나(“Drinking of the Wine”), 혹은 블루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Winnsboro Cotton Mill Blues”) 부분에서 음반의 특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음반에는 총 아홉 곡의 노래가 실려 있는데,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음반을 여는 “The River St.Johns”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어깨에 힘이 들어간 곡인데, 청자를 긴장시키며 음반으로 불러들인다. 이 음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퍼셀의 목소리가 주인공, 혹은 간판스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낮은 톤의 푸근한 목소리는 바이올린, 만돌린, 기타, 드럼 등 포크음악의 주요 요소들과 어울리며 하나로 통일된 목가적 심상을 음반 전체에 걸쳐 형상화하는데 이용된다. 심지어 그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연주곡(“Oh Captain”)도 존재한다. 이렇듯 음반의 초반부는 이러한 심상을 구조화하는데 사용되며, 점층적으로 쌓아올려진 분위기는 “The Rainbow Willow”에서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3분 30초를 넘지 않는 노래가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7분이 넘는 시간을 자랑하는 이 노래는 퍼셀 특유의 목가적인 아메리카나 음악을 강렬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히 음반의 백미라고 칭할 만 하다.

퍼셀의 음악적 파트너 윌리엄 타일러는 한 인터뷰에서 “셀틱 포크(영국 포크음악)나 델타 블루스와 차별화되는 포크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남부군 깃발(Confederate Flag)이 휘날리는 을씨년스러운 지역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 특유의 낭만도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그 어떤 지역보다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산다. 경쟁, 유행 등 도시적인 공격성에 쫓기며 살지 않아도 된다. 따사로운 햇살과 눈물이 날 정도로 맑은 공기가 함께 한다. 퍼셀의 음악은 남부의 좋은 점을 음악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