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밥솥

한국에서 돌아와 보니 전기 밥솥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급한대로 홀푸드에서 칼로스 쌀을 싸서 김치도 없이 된장찌개와 함께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들여다 보고 이것저것 눌러 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쌀은 이미 불려 놓았고, 된장찌개 재료들은 완벽하게 손질되어 보글보글 끓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밥을 지을 수 없으니 여간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밥솥을 쓰는 친구에게 물어도 보고 인터넷으로 매뉴얼을 받아 자가진단도 해보았지만 결론은 “수명이 다했다” 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 속을 끓인 뒤 오늘 마침내 큰맘을 먹고 아마존에서 새로운 밥솥을 하나 주문했다. 아마존 프라임의 위엄.. 무거운 전기 밥솥도 배송료 공짜, 그것도 이틀만에 배달된다! 한양마트에서 주문한 음식들은 2주가 다 되어 가는 오늘까지도 감감 무소식인데.

그 밥솥은 3년 반 전쯤 뉴욕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볼더에 들려 쓰던 거라며 툭 던져주고 간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쓰던 물건이 아니라 그 친구가 나를 위해 뉴욕에서부터 낑낑거리며 가지고 온 신제품이었다. 영국부터 미국까지 약 5년간의 유학 생활동안 강하게 단련된 그의 살림 실력은 당시 막 2년차에 접어 들고 있던 나에게는 일종의 경외의 대상이었고, 볼더에서 며칠동안 머물며 그는 밥솥과 함께 굴전과 생선전같은 “고급 요리” 들을 만들어주며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밥솥으로 참 많은 것을 해 먹었다. 쌀밥뿐만이 아니라 찜통이나 다른 비싼 요리도구들이 없는 가난한 유학생이 밥솥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해 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제 최종 사망 선고를 내린 뒤 그 밥솥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버리지 못할 것 같다고.. 얼마간은 더 간직해야 할 것 같다고.

전기 밥솥에서 밥이 다 되어 갈 때쯤 나오는 희미한 흰색 연기와 냄새를 좋아한다. 다른 요리들처럼 자극적이지도 않고 사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느껴지지도 않는 그런 아련한 따뜻함을 주는 것이 바로 뜸을 들이는 전기 밥솥이 가지는 매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끈적끈적하고 밀도 높은 압력 밥솥 밥을 잘 삼키지 못한 반면 꼬슬꼬슬하고 건조한 전기 밥솥 밥은 몇공기든 거뜬하게 넘길 정도로 좋아했다. 유학생에게 쌀밥과 김치는 단순히 익숙한 음식 이상의 감정적은 무언가로 다가온다.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이 두가지 음식은 사실 한국에서라면 기본 중의 기본인, 식당에서는 음식의 메뉴에도 등장하지 않는 조연중의 조연이다. 하지만 정작 그 두가지가 없으면 뭔가 식사를 해도 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팬티를 입지 않고 청바지를 입었을 때 느껴지는 불안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기름진 미국 음식, 혹은 접시 하나에 자신의 모든 몫이 담겨져 나오는 서양식 음식을 먹을 때 가장 그리워 지는 것도 찌개도 나물도 김밥도 아닌, 먹은 줄도 모르고 먹었던 흰 쌀밥과 김치인 것이다.

익명성


어제 쓴 글 하나를 지웠다. 부모님이 내가 앞으로 만날 여자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를 기록한 글이었는데 두고 두고 읽을 가치는 떨어지는데 쓸데없는 이슈들만 만들어 낼 것 같아 그냥 지우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 글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온라인상에서 익명성을 포기하는 행위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몇년전 블로그와 트위터, 텀블러, 그리고 내가 활동하는 유일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을 나의 실명으로 일괄적으로 교체했다. 이유는 크게 네가지 정도가 있었다. 첫째, 유치하게 느껴졌다. 실명 의외의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둘째,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익명성 뒤에 숨은 나를 찾아낼 수 있다. 이 바닥이 생각보다 좁아요. 콜로라도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한국 남자 사람은 끽해야 대여섯명. 그 중에 결혼 안한 사람은 두 세명. 그 중에 잘생긴 사람은 딱 나 하나. 셋째, 익명성 뒤에서 거짓을 생산해 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그렇게 deviate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두고 싶었다. 익명성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거짓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큰 쾌락중 하나다. 근데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다. 넷째, 언젠가는 익명성을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싸리 이 시점부터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난다 작가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익명성과는 별개로 젊은 시절의 나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사진에 찍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왠지 내 얼굴만은 사진은 왜곡의 기술이라는 편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정도의 변형을 일으킨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적인 불쾌함때문에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내 과거 모습을 단지 기억에만 의존해서 꺼내보는 것은 상당히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지속적으로 기록해 두기로 했다. 나의 이십대는 이제 거의 끝나가지만, 30대는 20대보다 조금 더 많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잘생겨서 혼자 보기에는 아깝지만.

밀린 일기.

1.
3월 말 봄방학때 시카고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지난 월요일까지 정말 대단한 두달여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음 학기부터 펀딩 프로세스가 약간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학과에서 지금까지 오로지 학점과 학생 평가만으로 결정하던 펀딩 기준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매 학년마다 각기 다른 평가 기준을 만들어 이를 보완하기로 했다. 즉 1년차는 평점 3.5 이상, 2년차는 퀄 시험 세과목 전부 통과, 3년차는 컴프리헨시브 오럴 시험 통과, 4년차는 프로포절 디펜스 통과, 뭐 이런 식으로. 이 과정들을 모두 순조롭게 마쳐야 tier 1 에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펀딩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나 뭐래나. 문제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4년차들이 프로포절 디펜스를 4년차 말에 보지 않고 여름 방학을 논문 쓰는데에 할애한 뒤 그 다음 가을에 본다는 관례가 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년 봄에 프로포절 디펜스를 보는 것이 “ideal” 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4년차 말까지 preliminary results 가 나온 논문 두개와 프로포절 수준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세번째 페이퍼까지 준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름 3개월을 마저 소진한 뒤 5년차로 올라가자 마자 프로포절 디펜스를 치루는 것이 일반적인 스텝이었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냥 일정에 맞춰 프로포절 디펜스를 앞당겨서 치루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난 가난한 학생이기 때문에 한푼이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정줄 놓고 있었던 2월과 3월의 대부분을 후회할 틈도 없이 서둘러 교수님들과 만나 일정을 상의하고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논문도 진행시켜야 했다. 두달만에 논문 두개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자신만의 틀이 만들어져 있는 대가들이나 하는 것을 초짜인 내가 따라할 수도 없었다. 불가능한 목표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만큼 desperate 한 느낌을 주는 일도 드물 것이다. 그동안 뜸했던 지도 교수님을 다시 일주일마다 찾아 가기 시작했다. 지도 교수를 만난다는 것은, 마치 시험을 일주일에 한번씩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정작 교수님은 별 생각이 없으시겠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은 버겁고 힘들기 그지없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방향, 그리고 처리하는 요령이 명확하게 주어져 있는 일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되어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앞이 캄캄한 상태에서 모든 단계를 try and error 로 찾아 내야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뿐더러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함께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압박도 크게 받게 된다. 논문 주제를 잡고, 눈이 빨개질 때까지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모델을 만들었다 고치기를 수십번 반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넣어 돌려서 에러를 찾아내어 수정하고, 결과가 나오면 해석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모델을 수정하고, 수정한 모델을 다시 컴퓨터에 넣어서 시뮬레이션하고..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하나의 논문이 나온다.

그렇게 두달을 보냈다. 프로포절 디펜스는 잡마켓에 나가기 전의 대학원생이 논문 심사 위원회 교수님들을 모셔 놓고 논문의 챕터 구성부터 기본적인 아이디어, contribution, 방법론, 예비적인 결과와 앞으로의 수정 방향까지 함께 토의하는 자리다. 토의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지적당하고 숙제를 잔뜩 받아가는 자리인데, 이 과정에서 준비가 미흡하다고 교수님들이 판단하면 탈락하기도 한다. 탈락은 “넌 잡 마켓에 나갈 자격이 없어. 조금 더 해.” 라는 뜻부터 “넌 박사 논문을 쓰기에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라는 뜻까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을 패닉으로 몰고 가서 자살 증후군을 부추긴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논문을 쓰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관련 분야에 공헌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나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생각했다. 훨씬 더 큰 판을 보고 있는 교수님들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인데, 문제는 이 부분에 대한 확신없이 그 다음 단계를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는 딜레마의 존재였다. 모델을 만들고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은 다분히 기술적인 것들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잡고 이를 명확히 하는 과정은 학문을 하는 기본적인 능력에 달린 문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학자로서의 자질이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프로포절 디펜스는 한시간 반 가량 진행됐다. 시험의 앞뒤로 나를 제외한 교수님들간의 간단한 미팅이 있었고, 그 사이에 내가 한시간 가량 발표를 하며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과정이 있었다. 집과 학교에서 몇번이나 혼자 연습해 봤지만 말이 꼬이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발음도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부분에 대한 걱정도 물론 컸지만 역시 가장 큰 걱정은 교수님들의 질문을 한번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해가 될 때까지 몇번이나 다시 물어볼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파돈 미는 너무 식상하고 세이 어게인 은 너무 버릇없으니까 좀 길고 복잡하게 다시 물어보자 등등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내 메인 지도 교수님인 터키 출신 꽃미남 교수님도 긴장을 하셨는지 (내가 첫 제자다) 역시 꽤 오래 전에 시험장에 나타나서 이것저것 체크해 주셨다.  다행히 말도 잘 터졌고, 교수님의 지적들도 잘 알아 들었다. 네 분 모두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다. 앞에 놓인 메모지에 받아 적긴 했는데 너무 휘갈겨 써서 나중에 끝나고 보니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내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은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 녹음도 하지 않았다. 다음 주에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서 다시 한번 전반적인 점검을 받을 예정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공중에 2cm 정도 뜬 기분으로 프로포절 디펜스를 마쳤다. 발표를 마치고 밖에서 교수님들의 심사를 기다리는 과정은 정말 최고의 스릴을 맛보게 해주었다. 대학원 행정을 책임지는 P 아주머니가 자기 오피스로 불러 앉혀서 농담도 건네주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시켜 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리고 컨퍼런스룸 문이 열리고 한분씩 나오시는 교수님들이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실 때의 짜릿한 쾌감! 그렇게 디펜스를 통과했고, 지도 교수님은 다리가 풀린채 허허거리며 웃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시며 수고했다고 그 사람좋은 미소를 보여 주셨다.

2.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서 4년만에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J 형님의 환송회가 있었다. J 형님은 L 경제연구소에서 7년간 근무하신 베테랑 이코노미스트로 이미 여기에 올 때부터 확실한 리서치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과정을 1년 먼저 끝낼 수 있었다. 다시 연구소로 복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잡마켓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이 형님은 가족을 다른 곳에 두고 혼자 오셨을 때 집을 구하기 전까지 잠시 내가 사는 곳에서 나와 함께 살았던 기억도 있어서 더욱 각별했다. 항상 침착하고 꼼꼼하게 돌다리도 세번씩 두들겨 보는 성격이 퍽 마음에 들기도 했고. 마침 내가 큰 시험을 끝내고 열려서 마음도 가볍게 나갔다.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J 형님을 위한 자리이니 피곤하다고 해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유학생 사회에 대한 불만은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제 여기서의 생활도 4년을 꽉 채워 가기에 대부분의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왠만큼 적응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그날도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내가 식사 내내 삼겹살과 갈비를 구워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모습이나, 프로포절 디펜스를 방금 치루고 나왔다는 것을 다 아는데도 다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나에게 운전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나.. 뭐 이런 것들. 이제는 그냥 다 웃으면서 받아 들인다. 다 내가 막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놈의 나이 문화. 한국에 돌아가면 질리도록 경험하게 되겠지. 대학원 유학을 상대적으로 너무 빨리 오니까 3년차가 끝날 때까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살게 된다. 대학원생들만으로 구성된 그룹을 보면 답답한 면을 많이 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다들 나름의 뜻이 있어 비싼 돈 들여서 미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다들 각자의 개똥철학이 있다. 문제는 그 철학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만 하고 싶어하지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J 형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나마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화를 진행하는 데에 익숙한 분이기 때문이다. 다른 답답한 면은 오히려 더 이성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아니 꽤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오기’ 만 남아 더이상 가망 없는 유학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 자체에서 오는 비효율성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자아 자체가 뒤틀려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회사에 취직하며 살았다면 결코 만나보지 못했을 별의별 캐릭터들이 다 있다. 일종의 사회적으로 도태된 이들이 부모의 손을 빌려 좀비처럼 살아 남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멘붕’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결코 아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며 이 힘든 박사과정을 버텨 내려고 하는 것일까. 미국 문화에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틀어 박혀 영어를 하루에 한마디도 쓰지 않으며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 개강 직전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가 뭘까. 다 “미국 박사 학위” 라는 간판이 주는 어떤 이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학벌 컴플렉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든 미국 박사 학위를 과대평가하는 한국의 특수한 병신같은 문화때문이든 무언가 물질적으로 얻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이 지난한 과정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난 절대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을 속이는 행동이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한다.

3.

시험이 끝나고 이번주 주말까지는 논문은 들여다 보지도 않기로 했다. 특히 주말다운 주말을 보내본 적이 그동안 한번도 없기 때문에 절대 이번 주말 전까지 공부와 관련된 그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다짐하고 보니 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몇달동안 활자만 죽어라 본 (그것도 영어만..) 사람이 다시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은 뭐랄까, 독서가 참 좋은 거라는 거 잘 알고 있는데 물려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몇주전 신청한 파이낸셜 타임즈는 아직도 첫번째 배달이 오지 않고 있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일주일동안 읽기에는 분량이 너무 적다.

그래서 게임을 시작했다. 디아블로3. 재밌었다. 원래 게임에 한번 빠지면 밤을 새워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렇게 이삼일 하다 보면 금방 질려서 더이상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스타 크래프트만 예외적인 경우였고 워크래프트부터 커맨드앤 컨쿼, 삼국지, 문명까지 다 그런 식이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해온 유일한 게임인 NBA Live 시리즈는 하루에 한게임, 딱 한시간 이상은 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그래픽카드가 후져서 최근 시리즈는 맛도 못보고 있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monk 라는 직업을 선택해 대악마 디아블로를 잡기 위해 지옥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편이라 대화도 꼼꼼하게 다 읽고 다 들으며 맵의 모든 곳을 밝혀가며 플레이했더니 사흘만에 노멀 레벨의 끝판을 깰 수 있었다. 깨면서 나는 딱 여기까지구나, 싶었다. 더 높은 레벨은 더 심한 노가다와 더 심한 아이템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는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제 딱 게임에서 빠져 나와서 다시 현실 세계에 로그인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책을 읽을 생각이다. 방학이니까, 그나마 방학이니까, 아침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만 공부하고 저녁 시간에는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프로포절 디펜스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들이 많다. 우선 논문은 시험 준비와는 다르게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처럼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내가 뭘 썼는지 까먹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루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발전을 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논문을 쓰는 가장 좋은 요령같다. 그리고 내가 만약 무사히 졸업을 하고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면, 그리고 학교에 계속 남아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다면, 아마 비슷한 패턴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구체화시키고, 관련 논문 읽고, 모델 만들고, 모델 풀고, 컴퓨터로 돌려 보고, 결과 나오면 해석하고, 동료 교수들이랑 의논하고, 컨퍼런스 가져가서 발표하고 코멘트받고, 수정하고, 저널에 내고, 운 좋으면 책도 쓰고. 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늙어서 죽게 되지 않을까 싶다.

4.

컨퍼런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운좋게 올해 세개의 컨퍼런스 스케줄이 잡혔다. 물론 그중 하나는 포기했다. 이태리 밀라노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과 함께 하는 서머 스쿨인데 돈도 많이 들고 다른 이유도 있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거기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 포기. 나를 스토킹했던 여자가 하나 있는데 하필 그놈). 다른 하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컨퍼런스다. 오늘 정식으로 acceptance letter 를 받았다. 6월 15일까지 논문 최종 버전을 보내야 한다. 부랴부랴 수정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 학교에서 올 11월에 주최하는 Midwest Macro 컨퍼런스다. 지도 교수님이 넣어 주겠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날라갈 필요 없이 볼더에서 편하게 발표할 수 있게 됐다. 너무 많은 컨퍼런스 스케줄도 좋지 않다고 한다. 적당한 컨퍼런스 일정은 논문 집필의 생산성을 극대화시켜주지만 지나치게 많은 컨퍼런스 일정은 컨디션도 망가뜨리고 불필요한 코멘트를 너무 많이 받게 되어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맞는 말 같다. 올 가을 잡마켓에 나가기 전 연습삼아 한번 해본다는 느낌으로다가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서울에서 하는 컨퍼런스 덕에 한국에도 가게 됐다. 7월 6일 새벽 네시에 인천에 떨어져서 26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온다. 달랑 20일짜리 여행이지만 지금부터 너무 설레인다. 먹고 싶은 음식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아직 가득하다.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서울과 한국은 내 고향이고 내 인생의 주춧돌이다. 결코 단절될 수 없는 관계가 이 나라와 나 사이에 있다.

5.

그래서 딱 1년 남았다. 졸업까지. 이 블로그는 유학을 준비하며 만들었다. 아마 2007년이나 2008년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이제 졸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2005년이었고, 그 이후 티스토리로 한번 옮겼다가 여기로 왔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읽으며 그분들의 실제 삶이 큰 폭으로 변화할 때마다 내 기분까지 싱숭생숭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그 차례가 올 것 같다. 1년 뒤, 나는 이 볼더에 더이상 없을 것 같다. 물론 일이 잘 풀리면. 그리고 하나 더 큰 목표가 있다면, 1,2년 내에 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뭔가 진척을 좀 보이는 것. 이건 졸업과는 다르게 별다른 대책은 없는데 ㅋ 그래도 이제 마음을 오픈하고 있기로 했다. 며칠전 전화에서 어머니께서 “선 준비할까?” 하시길래 식겁했다. 선은 좀 그렇고 소개팅이나 몇번 해볼게요, 하고 대답해 드렸는데 그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서 반드시 여자를 만날 생각이다.

참, 디펜스 준비로 바쁜 와중에 멀리 뉴욕에서 방문하신 S 누님도 뵈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뵈었는데 역시 수다의 여왕다운 자태를 뽐내주셔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홀딱 빠져들었다가 나왔다. 결혼 후 삶이 너무 행복하신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참 기뻤고, 내가 너무 경황이 없는 와중에 만나서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도 컸다.

6.

그리하여, 난 내일도 늦잠잘거다.

손바닥 위.

이틀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길게 수다를 떨었다. 길다고 해봤자 한시간 남짓일 뿐이다.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어머니와 한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자친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여자친구가 가장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고, 집에 오면 가끔 가다 재롱을 피우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에 그쳤을 따름이었다. 아마도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였을 것 같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군대가기 전 어머니와 매일 아침 동네 근처를 산책하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시초였던 것 같고. 유학을 온 후로는 일년에 딱 한달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에 되도록이면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 외출하기 전 어머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단히 폐쇄적인 인간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나고 싶던 지인들을 한달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최소한 한번씩은 만나려고 하니 하루에 몇탕을 뛰어도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에 애가 탔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머니와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내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거의 완벽한 대화 상대를 ‘발견’ 한 것이 너무 늦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최근들어 어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나의 논문이 어떻게 진척되어 가는지 무척 궁금해 하신다. 이분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의 건강이나 이곳에서의 생활 따위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실 뿐이다. 이건 한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분과 그분과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온 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궁금증일 것이다. 음식은 해먹으면 그만이고, 청소나 빨래는 때가 되면 하면 된다. 친구들과 놀거나 술을 먹는 것도 하고 싶으면 하라지. 그런건 그분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밥을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도 늘 관련 연구 주제를 발견해 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분들 앞에서 나는 감히 거짓말을 꾸며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물쭈물 말을 이어가면 귀신같이 내가 이 길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파악하신 뒤 그 시점에서,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들여다 보고 글을  써야 하는지 차근 차근 말씀해 주신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전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한 분야에서 일정 수준에 오르면 완전히 다른 분야를 들여다 보는 시각 자체도 따라서 함께 발전한다고 한다. 즉 동양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으면 천체 물리학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해도 대충 그 분야의 ‘큰 그림’ 정도는 한번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학문 분야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는 것은 굉장히 기술적인, 주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대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시고 이토록 정확하게 콕콕 아픈 곳을 짚어 주시는 것일까.

부모님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어릴 때보다 오히려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니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걸어갔던 길을 이미 다 경험하셨고, 내가 현재형으로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당신 나름대로의 해답을 이미 몇십년전 내리신 분들이다. 공부와 친구들에 둘러싸여 가족과 심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10대 시절에는 아예 부모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술과 연애에 푹 빠져 흥청망청 놀기 바빴던 20대 초반의 부모님은 나약해 보이는 다른 하나의 인간일 뿐이었다.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 을 소중히 간직하기 시작했고,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멍청한 머리로 공부를 조금 더 해보겠답시고 억지로 나온 유학길에서 마침내 부모님이 얼마나 크신 ‘어른’ 인지를 깨닫게 된다. 한번에 확, 와닿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통해, 혹은 일년에 한번 얼굴을 직접 뵐 때마다 조금씩 확신에 확신을 더하게 된다. ‘이 정도면 제법 똑똑한/잘난/괜찮은/잘한 편 아닌가’ 라는 자만심을 입밖으로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짐작하시고 단 한두마디로 여지없이 깔아 뭉개버리는 가장 엄한 스승이자 내가 가야할 길을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더더욱 따뜻하고 힘이 되는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는 가장 열렬한 응원단장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은 그릇에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확실히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늘’ 이나 ‘그림자’ 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고 길러 그놈이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지금 나의 부모님이 내게 주시는 수준의 조언과 격려, 충고와 꾸짖음을 과연 내가 그 친구에게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너무 자신없다. 나는 그때도 나 하나 먹고 살기 바빠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의 아버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항상 그리워하시고 그분의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씀을 넋두리처럼 하신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의사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내 기억에 바둑밖에 없었다. (아 고스톱도..) 결국 무엇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의 크기는, 그릇은, 그런 표면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자신이 과연 그 수준에 도달해 있을까 비교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함과 강함, 깊음과 유연함이 있다. 그 크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지만 함께 있다 보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아직 갈길이 멀다. 그래서 토요일 밤이 늦도록 학교에 남아 되지도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다.

카카오톡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을 때면 가끔 문명의 이기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쓱쓱 문자를 마음껏 주고 받을 수 있다니, 늙은이의 넋두리같지만 “몇년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긴 하다. 낮과 밤이 달라지는 시차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다는 느낌까지 받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글과 한국어를 통해 감정을 교환한다는 것에 대한 고픔과 그리움, 소중함 따위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소중한 사람과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꼬옥 쥐고 쓰다듬기를 반복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몇 있다. 그중 한 무리는 대학교때 활동했던 영자 신문사 동기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 능동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았던 친구들이기도 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삶의 기억들을 현재형으로 나누며 함께 성장한 삶의 동반자들이기도 하다. 어설픈 실수도 서로의 눈앞에서 저질렀고, 변해가는 모습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 보았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갈등과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들을 주고 받았다. 조금 더 친하고 덜 친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나에게는 하나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과 스마트폰의 한 어플리케이션으로 문자를 주고 받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그 친구들중 특히 나와 더 가까워던 몇몇이 그네들끼리 교환하는 문자에 나를 끼워 넣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서 볼까, 언제쯤 볼래, 같은 사소한 문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조금이나마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어 고마웠다. 그러던 와중 며칠 전 새로이 새댁이 된 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다같이 만난다는 소식을 그 문자를 통해 알게 됐다. 연말정산으로 정신없는 그 새댁 친구를 위해 토요일 오전 이태원에서 만나 브런치를 함께 하자는 등의 정보가 바쁘게 오고 갔다. 그렇게 띠링 띠링하고 울려대던 스마트폰은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그건 아마도 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입속에 무언가를 집어 넣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폰에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들이나 그들이 던지는 익숙한 말투들을 보며 덩달아 흥분했던 내 마음도 이내 다시 가라 앉았다.

그래서 다시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있었는데 다시 몇차레의 알람이 울렸다. 그 친구들중 몇몇이 함께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내준 것이다. 그 사진에는 내가 좋아했던 친구도 있었고, 함께 도서관에서 복학생 냄새를 풍기던 친구도 있었다. 함께 농구를 했던 친구,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함께 기울이던 친구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다시 급하게 요동치면서 전화라도 한통 할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라면 페이스타임도 할 수 있을텐데, 하고 잠시 생각했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오늘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친구들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알람음이 한참 바쁘게 요동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잘 놓아주는 것도 사람이 성장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할 수 없다면 언제 무엇을 놓쳐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그것이 떠나갈 때 마음이 조금은 덜 허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영어로 쓰인 책을 읽고 영어로 이곳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조금씩 더 익숙해 질수록, 한국과의 물리적 거리가 한없이 먼 그 상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점점 더 크게 실감할 수록, 얘들아 나한테서 멀어지지 말아줘, 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는 그런. 그런 저런 생각들을 했더랬다. 그래서 친구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그 서울의 이태원, 토요일 점심과 오후 사이에 있는 그곳으로 전화를 걸 수가 없었더랬다. 나의 토요일 오후는 열두시간 뒤쯤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

나는 요즘 행복하다.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보고 통과를 해야 ‘다음’ 이 주어지는 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축은 한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할 정도로 항상 가난과 맞닿아 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몸은 늙어 간다. 그래도 행복하다. 하루 세끼 밥을 다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은 항상 통장에 있고, 몸을 편히 뉘일 수 있는 집이 있으며, 앉아서 무언가를 읽거나 쓸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건강한 몸과 남들에 비해 많이 뒤쳐지지는 (hopefully) 않은 머리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항상 생각하는 것들이다. 요즘은 여기에 더해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도 상당한 편이다. 적당한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나를 괴롭히는 타인의 존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그리고 내가 피해를 주는 사람 역시 (hopefully..) 딱히 없는, 딱 그정도의 거리감. 그 누구와도 감정적인 갈등을 빚지 않고, 또 그 누구에게도 나로 하여금 발생하는 고통을 안겨주지 않는 그런 상태. 나는 지금 현재 그게 너무 행복하고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아마도 조금은 달라지겠지.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이 나이쯤 되어서 생각해 보니, 그건 그저 우연에 의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걸 운명이라는 말로 이쁘게 채색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희망에 달려 있겠지만,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사람에게는 그저 언제 올지 모르는 우연적인 사건 사고중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 가치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 를 만나는 것이 이제 내겐 더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어떤 이를 언제 만나던지, 그 사람을 만나는 내 자신이 이젠 더 중요하고 흥미롭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적당한 사람들과 적당히 떨어져 있는 지금의 고요함을 적당히 즐길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 여름이 내게 준 교훈이다.

(진심으로) 생일 축하한다.

편지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무겁게 가라 앉는 마음에서 괜시리 편안함을 느꼈다.
되돌아온 이 편지 한통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 것도 되돌이킬 수 없고, 사람의 마음또한 치유될 수 없다. 이 편지로는.

사람 하나를 잃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무서워 지다가도,
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자포자기의 심정이 가져다 주는 안도감을 반기기도 한다.

다음주 월요일에 큰 시험 하나를 치루고 나면,
열흘 정도의 짧은 휴가를 다시 얻는다.
휴가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논문을 쓸까 책을 읽을까 여행을 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이 편지를 돌려준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꾸 떠올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계속 붙잡혀 있기에는 그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역시
한국에는 당분간 들어가지 말아야 겠다.
취직을 해서 삶이 확 변하기 전까지는.

근황.

1. 시차는 대충 적응되어 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열시에 자서 새벽 세시에 한번 깨고 다시 잠들어서 새벽 다섯시에 완전히 일어 났다. 계속 이정도 리듬만 가져가 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의도적이지 않게 아침형 인간으로 일주일째 생활하고 있는데, 하루가 무척 길어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늘도 아침에 간단한 청소, 냉장고 정리, 도시락 싸기, 홍차 내리기, 아침 식사까지 마무리하고 집을 나섰는데도 시간은 일곱시를 겨우 넘어서고 있었다.

 

2. 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선배의 환송회가 있었다.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 사람은 4년만에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연구소에 직장을 얻었다. 쁘띠거니의 수족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본인이 정한 길이니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부양 가족이 많아서 더이상 오래 공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여러가지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결론은 한가롭게 보낼 시간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 마침 간 곳이 한국 식당이었는데 고기를 굽더라. 나는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3. 이어폰을 새로 샀다. 커널형을 예전부터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200불이 약간 되지 않는, 중간쯤 되는 레벨의 모델을 하나 골랐다. 어제는 계속 밖에 있었는데, 아마존 어플로 추적한 결과 저녁 여섯시쯤 집에 도착 완료. 하지만 나는 2. 에서 말한 회식때문에 밤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네시간여동안 얼마나 몸이 달았는지.. 아마존은 트래킹하면서 기다리는 맛이 쏠쏠하다. 이어폰은 오늘 아침에서야 처음으로 사용해 보고 있다.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녀석이다. 귀에 쏙 들어가는 느낌은 좋은데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처럼 무언가를 먹을 때나 이빨을 부딪힐 때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커널형이 다 그런건가 보다 하고 있다. 3년동안 나와 함께 했던 뱅엔 올룹슨 이어폰은 서랍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 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고마움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이어폰만큼 내 맘에 쏙 드는 것도 없었다. 소리도 아주 좋았고, 귀에 걸치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이어폰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고, 그 이어폰을 계속 쓴다는 행위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척 컸기 때문에, 이제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4. 그렇다고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열심히 하루 하루 넘기는 달력을 사용하고 있고, 쿠션도 잘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흔적을 지운다고 해서 쉽게 잊을 수 있거나 정리되는 건 아니다. 또한 억지로 잊고 싶지도 않고, 지우고 싶지도 않으며, 미워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나와 상관없이 원래 좋은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걸 억지로 부정하거나 외면하려는 시도는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5. 이제 편지 한장만 받으면, 대충 마음속에 있었던 부채는 정리될 수도 있을 것 같다.

6. 시차에 적응함과 동시에 생활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 왔다. 아침에 학교로 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아직 딴짓을 더 많이 한다. 소설책도 읽고 친구와 수다도 떤다. 논문은 아직 읽지 않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내 논문도 아직 열어 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여러가지 책을 읽고 있다. 글자부터 눈에 익숙해 져야 뭐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그래서 책상앞에 더 오래 달라 붙어 있어야 한다.

7. 며칠전 농구를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났는데, 운이 없게도 양쪽 다리에 동시에 쥐가 나 버렸다. 덕분에 코트위에서 한동안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늙어서 그런지 이제 좀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걸을 때마다 통증이 와서 운동은 며칠동안 쉬고 있다. 빨리 뛰고 싶다. 농구공을 만지고 싶다. 로잉도 하고 싶고. 운동을 할 때가 그나마 조금 더 행복한 것 같다.

8. 오마하 여행은 결국 포기. 시카고까지 가는 비행기값이 엄청 비싸서 -_- 역시 비행기는 몇달 전에 미리 알아 봐야 하나 보다. 그래서 개강 바로 전 약간의 여유가 허락될 때 알아 보니까 시카고행 비행기가 $200 도 안하더라. 고민중이다. 사려면 지금 사야 하는데. 동부는 겨울에 반드시 갈테다.

9. 일주일째 채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느낌은 과히 나쁘지 않다. 아직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알아보며 서툴게나마 배워 나가고 있다. 초심자를 위한 책이 한권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늘이나 내일쯤 책식 전문 매장에 가서 물어볼 참이다.

10. 그래서 그런지 살도 쑥쑥 빠지고 있다. 세끼를 다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요리도 왠만하면 직접 해서 먹는 중인데 운동때문인지 채식때문인지 부족한 수면 탓인지 몸이 무거운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11. 머리를 다시 길러볼 생각이다. 이유는 그냥.. 삭발도 좋고 단정한 짧은 머리도 좋은데 난 사람들에게 핀잔 (=욕) 들어가며 머리 길렀던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12. 크롬이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한글 버전으로 스스로를 바꿔 버렸다. 그리고 자꾸 튕긴다. 잘 열리지도 않고. 그래서 파이어폭스로 돌아 왔다. 새로운 버전을 깔았는데 깔끔해 진 것 같긴 하다. 여전히 크롬보다 느리지만.

13. 세상엔 좋은 음악이 너무 많다.

14. 좋은 영화도 많다.

15. 좋은 사람도 많은데, 그 사람들을 다 만나고 싶진 않다.

16. 농구하고 싶다.

17. 참, 윔블던이 시작한다.

18. 난 좋은 공연 티켓 몇장을 구입했다.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도도스, 브라이트 아이즈. 후자는 사실 별로 안땡기는데 스캇이 가자고 해서.. 기분 전환 겸.

19. 참, 한달 뒤에 플릿 폭시스 공연이 있다.

20. 이곳에서의 관계들도 대충 정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 가 꼭 ‘마무리’ 를 뜻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명확한 관계를 서로에게 인식시키자는 그정도 의도.

050611

어제 늦게 잔다고 잤는데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생활 패턴이란 게 생겨 버린 것 같다. 이번 학기는 그런 학기였다. 아침 여덟시가 되면 몸이 먼저 긴장하고 저절로 눈이 떠지는. 하지만 잠을 자는 것은 영 다른 문제로 다가왔다. 일어나기는 하는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학기였다.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매일 매일이 재판을 기다리는 용의자의 심정일 거라고 생각하니 잠에서 깨는 것조차 괴로웠다. 멍하니 컴퓨터를 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적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설마, 벌써, 아직 아닐거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긴 했지만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로그인한 뒤 버튼을 몇개 눌러 성적을 보는 데까지 걸리는 3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심장은 쿵쾅거렸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와중 성적이 덜컥 나와 버렸고, 나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길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거의 한 10분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부모님께 우선 이메일을 보냈고, 이번 학기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교수님과  친구 한명에게도 감사의 이메일을 썼다. 페이스북에 pass 라는 네글자를 입력한 뒤 스캇에게 문자를 보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B 를 받았다고 알려줬다. 뒤이은 안도와 축하의 메시지들을 받으며 지난 1년간 감내해야 했던 마음 고생이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려고 했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줄 알았던 그 감정들이 쉽게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아니 2년간 내 마음속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고통이었는데도 갑자기 공백상태가 된 듯하게 거짓말처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웃겼던 건, 아니 아직까지 웃기는 건, 난 이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어쩌면 그 고통이 지난 2년간 나의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준 원동력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면 너무 슬픈데. 기쁨과 희망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이 나를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 밥을 먹게 하며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게 만든, 그 힘의 원천이었다는 건지.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로 운동을 하러 갔다. 오랜만에 로잉머신을 하니 허버지와 등쪽이 뻐근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망가진 몸은 한두번의 운동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한국으로 나와 함께 가는 짐속에 비좁더라도 운동복과 농구화를 집어 넣어야 겠다고도 생각했다.  오늘은 졸업식 이틀째였다. 그래서 학교 렉센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농구 코트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무언가를 수리하는 스태프 두어명과 자랑스러운 딸을 따라 잠깐 구경하러 들어온 노부부 두명 정도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슛폼을 가다듬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작 2,3주 정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새 폼이 무너져 내린 것인지. 드리블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설거지를 한 후, 청소기를 한번 돌렸다. 보통은 이정도에서 청소가 마무리되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뭔가를 더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고에서 캐리어를 꺼내 펼쳐 놓고 한국으로 가져갈 짐들을 하나 둘씩 툭툭 던져 넣기 시작했다. 지저분했던 책상과 책장도 말끔히 정리했다. 청소하는 와중에 아마존에서 CD 가 도착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Explosions in the sky 와 Low 의 신보를 듣고 있다. 둘다 너무 좋다.

오후 세시쯤 됐을까, 딱히 뭘 사야 겠다는 생각도 없이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가끔씩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청량해서, 이대로 집안에 있으면 왠지 안될 것 같았다. 한국으로 가기 전까지 차는 되도록이면 운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은 여기 저기 돌아다닐 것 같아 일단 끌고 나갔다. 우선 생활용품점에 들려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샀다. 한국집을 떠난지 3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에 지금 뭐가 필요하신지 전혀 모른다. 괜히 어중간한 것들을 사갔다간 중복된다고 쿠사리를 먹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이것 저것 기웃거리다가 조그마한 주방의 소품들, 아이디어 상품들을 몇개 끌어 모았다. 손목이 약한 어머니를 위한 병따개, 딸기 꼭지 따개 (이거 되게 재밌을 것 같다), 와인 코르크, 플라스틱 손잡이가 있는 집게 등등. 아버지를 위해서는 와인 두병을 준비하기로 했다. 양주를 좋아하시지만 와인을 더 많이 드시라는 의미에서.. 누나와 매형의 선물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백화점에 들러 나를 위한 옷도 두벌 샀다. 별거 없었다. 그냥 어두운 색 면바지 하나와 한국에서 입을 반팔 폴로 셔츠 하나. 집에 와서 보니 셔츠는 너무 커서 내일 가서 바꿔야 겠다.  저번에 봐둔 양초를 하나 사려고 앤쓰로폴로지에 들어가서 몇개 맡아 봤는데, 한국 가기 5일전에 양초를 굳이 사야할 이유가 있나 싶어 그냥 돌아 나왔다. 나중에 집에 와서 저녁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 아이쿠, 그때 살걸 하며 후회했다.

성당에 도착하니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더랬다. 그래서 학교쪽으로 다시 걸어 내려가 레코드샵에 들어 갔다. 사고 싶었던 앨범이 몇장 있었는데 아마존에서 주문하면 혹여나 늦을 것 같아서 주문하지 못한 것들을 사려고 들어 갔더니, 그만 새CD 는 전혀 없고 중고 CD 들만 한구석에 쌓여져 있었다. 그 유명한 점포 정리. 이로써 볼더에 있는 로컬 레코드샵 두 곳 모두 문을 닫게 생겼다. 대단히 슬펐다. 그래서 힘을 좀 실어 주려고 살만한 거 없나 살펴 봤는데,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내일 덴버에 있는 레코드샵에 가볼 생각이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나와 집으로 돌아 왔다. 오래된 돼지고기에 오래된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어머니께서 주신 귀중한 냄비, 내가 태워 먹은 그 냄비는 마술처럼 또다시 맛있는 김치찌개를 완성시켜 주었다. NBA 플레이오프를 보면서 밥을 후다닥 먹고,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자 관련 서류들, 임금 계약(?) 서류들, 세금 관련 서류들, 음악 관련 서류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소화도 시킬겸 편지함에 다녀왔다. 코트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귀중한 편지 한통과 전데 구독한 저널 하나, 그리고 마그니피캇 6월호가 도착해 있었다. 스팸 광고 하나 없이 중요한 편지로만 채워져 있는 편지함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돌아와서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는 것도 잘하고 버리는 것도 잘한다.  음식은 더더욱 그렇다. 꼭 먹어야지, 다짐하고 사는 음식의 절반도 먹을까 말까다. 생활이 불규칙하기도 하거니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있다 보니 집에서 차분하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한참을 통화하고 끊으니 댈러스가 레이커스에 대역전승을 거두고 시리즈를 3-0으로 만들어 버렸다. 노비츠키를 보면서 전율이 느껴졌다. 그는 독일 태생의 선수로 지난 10년간 최고의 레벨에서 항상 플레이해 왔지만, 우승과는 늘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단순한 열망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나같은 평범한 인간이 욕망의 대상을 향해 갖는 그런 하찮은 감정따위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책상에 앉아 이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생각 자체를 잘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속의 큰 부분이 텅 비어져 있는 느낌이 하루 종일 계속된다. 시간은 참 느리게 가고, 나는 무언가를 더 해야 했다. 그래서 냉장고를 아예 싹 비워 버렸다. 그렇게 주방까지 완전히 정리를 끝낸 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와 다시 책상앞에 앉아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제는 몸이 좀 더 피곤해 져서 잠을 잘 수 있을까. 나는 잠을 왜 자야 했던 것일까.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잠을 자야 한다고 스스로를 강제했던 이유는, 단지 그 고통의 끝에 다다르기 위해서였던 것일까. 이제 그 끝을 지나 더이상의 고통이 없는 상황에 다다른 지금, 진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었던 수만가지 것들이 단 하나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책장에는 읽고 싶었던 책들이 쌓여 있고, 보고 싶었던 영화 목록도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책상 한켠에는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는 내 첫번째 논문이 얼른 더 수정해 달라고 재촉하듯이 놓여 있다. 해야 할 것들,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늘 하루 더 잠을 청해 보고 내일 아침이 되면 조금은 더 정리가 되어 있기를 기대해 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방학 끝물

방학이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다. 방학의 마지막 3,4일은 덴버에서 열리는 미국 경제학 대회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게 보낼 것 같으니, 실질적으로 푹 쉴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은 거다. 학기중에는 바빠서 뒤로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전부다 처리할 것 같은 의욕을 가지고 방학을 시작했지만, 학기가 끝난 후 탈진한 육체를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은 가지고 있지 못했나 보다.

요즘 내 하루 생활은 아주 단조롭고 평화롭다. 녹차의 약한 카페인 기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 밤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는데, 잡생각이 많은 요즘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벽 두세시까지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들면 아침 아홉시쯤 일어난다. 씻는 것은 저만큼 뒤로 미루어 두고 컴퓨터에 앉아 녹차 한잔 하면서 자잘한 일들을 좀 보고 인터넷도 좀 한다. 열한시쯤 늦은 아침겸 빠른 점심을 간단하게 차려 먹는다. 오늘은 신정이니 특별히 나를 위해 문어 다리를 삶아 초고추장을 만들어 찍어 먹었다. 서울에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왠만하면 밤 열시, 열한시쯤에 밤참을 즐겨 먹었는데, 문어다리 삶은 것도 꽤 인기있는 메뉴였다. 한국가면 어머니께 꼭 한번 해달라고 해야지! 낮에는 5분거리에 있는 학교 rec center 에 가서 열심히 운동한다. 농구도 하고, 유산소 운동도 하고, 근력 운동도 한다. 덕분에 요즘 온몸 곳곳이 쑤시고 결린다. 그래도 이제 나이가 있는지라 운동을 해야 건강 관리가 된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데 개강하고도 시간이 날런지는 잘 모르겠다. 운동다녀와서 씻고 책을 잠깐 읽으면 다섯시가 되고, 역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당에 간다. 성당에 다녀오면 해가 저물어 있고 저녁을 차려 먹는다. 오늘은 신정이니까 특별히 나를 위해 자반 고등어를 구워 먹었다. 집에 오븐이 있어서 쉽게 해먹을 수 있다. 동네에서 고등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가끔 덴버에 있는 한인마트에 갈때 소금간이 되어 있는 고등어를 꼭 사와야 한다.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며 한숨돌리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있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며 소일하다가 한시쯤 씻고 잠을 청한다.

가끔 나의 현재를 버거워 할 때가 있다. 일종의 인생의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돈도 없고, 공부도 뜻대로 잘 안되고, 짝도 없으니 감정적인 부분까지 힘들어 지는 상태.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다. 취직한 한국의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고, 나보다 멀찍이 앞서 나가 있는 학과의 다른 친구들을 볼때 움츠러 든다. 미국 경기탓이라지만 학비 지원이 줄어들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 자책감이 가슴을 찌른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도, 듣고 싶은 음악이 있어도 통장의 잔고를 보며 다음에 사자, 하며 억지로 마음을 달래야 한다. 작년에 옷을 거의 사지 못한 것 같다. 자동차를 팔아야 할 정도로 자금 사정에 치일 때면 이렇게까지 하면서 여기서 왜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고 공부가 순조롭게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벽에 막혀 재능을 탓하거나 모자란 머리를 쥐어 박는 게 하루에도 열두번이다. 24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게을러지는 자신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족이 옆에 있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동갑내기 한국인 동기 친구마저 지난 겨울 결혼을 해서 한국인 동기중에서는 달랑 나만  솔로다. 가족과 함께 계신 유학생분들을 보면 가정사에 치여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도 별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으신다. 옆에서 삶의 활력소가 될 뿐더러 책임감을 느끼니 더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들이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어제는 밤 열한시쯤에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 와중에도 이렇게 황홀하게 행복한 순간을 때때로 즐길 수 있다니 나는 정말 행운아인가 보다, 하는 그런 생각. 저금은 꿈도 못꾸고 미래는 어두운 불확실성 투성이지만 따뜻한 집안에 앉아 좋은 음악과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잠시나마 허락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비록 값비싼 레스토랑에는 가지 못하고 좋아하는 농구 경기도 티켓값을 감당하지 못해 구경도 못가는 처지이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요즘은 Kazuo Ishiguro 의 Never Let Me Go 를 읽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몇 챕터를 읽은 후 바로 반해 버릴 정도로 느낌이 좋다. 지은이는 일본 태생으로 어릴 때 영국으로 이민을 와 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정갈한 문체와 정확한 어휘 구사가 참 매력적이다. 정말 글 잘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해 보이는 데다가 플롯 구성도 참 좋다. 문장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 내는 능력이 참 놀라웠다.

요즘은 Beach Fossils 와 Wild Nothing 의 음악이 좋다. 슈게이징의 Dreamy 한 기분과 따뜻한 정서를 잘 느낄 수 있다. 최근에야 구입해서 듣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부터는 평일 낮에 영화를 보러 다닐 참이다. 주말과 평일에 따른 영화 티켓 가격이 많이 다른데, 같은 평일에서도 낮이나 오후의 영화표값은 조금 더 싼편이라 방학을 활용해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보러 갈 생각이다. Black Swan, 127 days, True Grit, King’s speech, the kids are all right 정도. winter’s bone 과 social network 는 바쁜 학기중에 놓쳤는데 기회가 되면 이 영화들도 꼭 보고 싶다. 미국은 확실히 유럽 영화를 볼 기회가 많이 않다. 뉴욕이나 LA, 시카고같은 큰 도시면 모를까, 중소 도시의 극장들은 유럽이나 아시아영화들에까지 배려해 주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 참,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겸 쓰레기를 버리고 우체통에 들어 편지를 확인했는데 반가운 카드 두장을 받았다. 이제나 저제나 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도착한 편지 한통과 전혀 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도착한 기분좋은 편지 한통이 우체통에 들어 있었다. 이런 맛에 죽지 않고 사는 건가보다,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