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다는 것

지난 2월 4일, 아내가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임신 29주차에서 30주차로 막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아이를 가진 것을 확인한 이후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여성병원으로 진료를 다녔는데, 쌍둥이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워낙 변수가 많고 다태아 임신 그 자체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기에 혹시나 모를 위험에 신속히 대비하기 위해 ‘차트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덜컥 “붙잡혀버린” 것이다. 담당교수는 은퇴를 몇 년 남겨두지 않은 베테랑 여성 의사였다. 많은 환자들로부터 “친정 어머니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환자에게 가깝게 다가가지만 진단과 처방은 대단히 냉정하고 보수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주 낮은 가능성일지라도 발생확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모든 위험에 예비적으로 대응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는 환자가 가장 잘 안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되내일 정도로 환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했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가장 안전한 길로 우리를 유도했다. 약물을 이용하여 최대한 주수를 오래 끌어보되, 경부가 약화되어 양수파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발견될 시 신속하게 수술을 진행한다는 것이 우리가 택한 계획이었다. 이동 에너지 레벨이 높은 아내는 한 평 남짓한 공동병실에갇혀 한뼘 정도 되는 창문으로 하늘을 그리워하는 생활을 다행히도 잘 버텨 주었고, 나는 매일 아내가 있는 중환자실로 출퇴근하며 아내의 노력을 뒷바라지했다. 덕분에 병원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마일리지를 많이 쌓을 수 있어 조금 뿌듯했고 병원 근처 독립서점에서 가끔 시간을 죽일 수 있어 좋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병원 내 방역 절차가 까다로워짐과 함께 나의 예민함도 덩달아 조금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2월 27일.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날, 병원에 있는 아내와 원격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크고 작은 이사준비를 치루어온 과정에 큰 마침표가 하나 찍히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이른 아침,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막 작업을 시작하던 순간 아내로부터 수술을 바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 아빠가 와주지 않고 혼자 이사를 마무리하려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무사히 잔금을 정산하고 새 집에 짐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순간 부모에게 남은 모든 책임을 떠 안기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경부가 많이 약해져 언제 양수파열이 발생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당장 이번 주말을 넘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소견과 본인은 아직 컨디션이 괜찮으니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면담실에서 아내를 배제한 채 담당교수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우리는 다음날 바로 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34주를 채우지 못하였기에 아기들의 폐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하루종일 나의 역할을 대신해 준 부모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려보냈다. 우리는 엄마가 급하게 끓인 떡국을 나누어 먹고 빠르게 헤어졌다. 아빠는 본인의 심장시술을 출산 예정이 이후인 4월 중순으로 미룬 터였다. 간절한 마음만 나눈채 헤어졌고, 나는 수술 준비물을 간단히 챙겨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담당교수는 우리를 두번째 타임에 배치했는데, 이는 친정 어머니가 받아온 “용하다는 시각”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천주교 신자였지만 사주 등을 믿는 부모의 심정을 배척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효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과학의 최전선에 서있는 담당교수도 최대한의 배려를 베풀어주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아내를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인큐베이터 하나가 간호사 세 명에 둘러싸여 급하게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순간 나를 스쳐지나갔는데, 본능적으로 ‘저 친구인가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몇 분 후 두번째 인큐베이터도 빠르게 나를 스쳐지나갔다. 탯줄을 자를 틈도, 사진을 찍을 틈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이후 소아과 주치의로부터 간단히 아기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병실로 이동하니 회복실에서 막 나온 아내가 누워있었다. 아내도 아기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그 ‘인위적인’ 아기의 울음소리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는 말도 했다. 그때부터 4박 5일 간 침상에서의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고통이 시작되었고 밑에서는 오로가 쏟아져 나왔다. 한달여 가까운 기간동안 입원생활을 지속한 아내의 팔에는 더이상 주사바늘이 들어갈 곳이 없었고 파란 멍이 가득했다. 소변줄을 차고 누워 무통주사 버튼을 눌러대는 아내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 높이를 조절하거나 패드를 갈아주는 일, 물을 입에 떠넘겨 주는 일 정도 밖에는 없었다. 양가 부모와 가족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간병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아내가 부탁하는 일을 처리했다. 커튼으로 닫혀진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우리가 사는 세계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침상에서 일어나면 아기들을 보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1분 먼저 나온 남자 아기의 폐기능이 완전치 않아 몇가지 약물을 투여했고 커다란 호흡 보조장치가 2kg을 갓 넘긴 아이의 작은 얼굴에 달렸다. 이런저런 보조장치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기의 사진을 간호사로부터 전달받아 본 후 가슴이 답답해졌다. 신생아중환자실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였고 그만큼 잔실수도 가끔 눈에 띄었는데, 여자 아기의 성별이 바뀌어 기록되는 해프닝은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차지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는 담당교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나이 어린 주치의만이 가끔 전화를 걸어 상태를 전달해줄 뿐이다. 남자 아기는 태어난 지 이틀 뒤 보조장치를 떼고 완전한 자가호흡을 시작했다. 사흘째부터 어미가 짜낸 초유가 미숙아분유와 섞여 삽관된 호스를 타고 아이들에게 먹여지기 시작하였고, 아내는 본격적인 젖몸살이 시작됨을 느꼈다. 퇴원 하루 전, 아직 아기들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산부인과 수간호사의 ‘전화 찬스’에 힘입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아내는 보는 순간부터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잘 살아 있음에,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임신 순간부터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왔다.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며 출산을 준비해왔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다 울어도 나는 마지막까지 울면 안되는 존재였다. 다행히 그 최악의 상황은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고, 조금 더 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신생아중환자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2월 내내 쉬지 않고 달려와 육체적으로는 매우 피로한 상태였는데, 아이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순간 몸 속 깊숙한 곳에서 한없는 기쁨이 솟아져 나옴을 느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새로 이사한 집에 함께 있다. 퇴원 후 다음날이다. 아기들은 아직 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머물며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퇴원 당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퇴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주는 쓸쓸함과 아이들을 직접 본 후 느낀 황홀함이 교차하는 멜랑꼴리한 기분에 휩싸여 집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친정 어머니를 태워 세 명이 함께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은 이사 직후 원시적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넘치는 에너지를 고스란히 물려준 친정 어머니는 그 에너지 레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이런 친정 어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집은 빠르게 ‘사람이 사는 모양’으로 바뀌어갔다. 아내가 조리원을 포기하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친정 어머니의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국을 휩쓴 바이러스로 인해 한달을 꽉 채워가며 입원과 수술을 경험한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어미의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삼시 세끼를 미역국만 먹어도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우리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그리고 병원에 남아 있는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는 병원 의료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대로 아이들의 치료를 맡길 것이다. 건강히 몸을 회복학 위해 노력하는 아내와 함께 아이들이 퇴원하는 그 날까지 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할 것이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왜 이 엄마와 이 아빠에게서 태어났는가’, 혹은 ‘나의 엄마와 아빠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시점부터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그 답을 결코 직접적으로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나를 낳았을 때, 내가 지금 그러한 것처럼, 그들도 미숙한, 덜 자란 어른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함께 성장했다. 울고 보채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사고를 치고 돌아온 나를 감싸안거나 혼내며, 그들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고도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난 어떤 순간부터, 나는 부모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게 되었고 더이상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지도 않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시점이 내 부모가 완전한 어른이 된 순간이라고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다. 이제 나의 부모는 병들고 늙어 약해진 육체를 가진 노인이 되었다. 약해진 육체는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자식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가 자라나듯 노인이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인이 자신을 잃어가는 것도 인생의 한 순환고리인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부모는 나에게 아이를 낳을 힘을 주었고, 이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른이 되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나는 어떤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느낀다. 인생의 새로운 숙제가 주어졌고, 아이들에게서 성장의 뿌리를 발견한다. 그 때 쯤이면 나의 부모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12 thoughts on “아빠가 된다는 것

    • 정신차리고 다시 읽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퇴원하셨군요.
      자라는 아이의 부모로서의 존재라는 점은 묘하게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서로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라봅니다.

    • 정성스러운 답글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기들이 태어난지 3주 정도 지났구요, 슬슬 퇴원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내는 운좋게도 두어번쯤 아기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만났구요. 걱정과 기원에 감사드립니다.

    • 기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아기들이 빠르며 다음주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 한달여만의 가족 상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오늘 딸도 무사히 퇴원해서 드디어 네 가족이 함께 있게 됐어요. 열심히 같이 살아보겠습니다.

  1. 종혁님께, 사모님께, 자녀분들께 아버지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제천에서 기도드립니다. 그저 이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네요.

    •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기도 덕분에 아기들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었구요, 빠르면 다음주 쯤 퇴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족 모두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요. 특히 아내는 몸도 정신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2. 저는 첫아이의 기억이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아빠입니다. 중간에 눈물이 날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습니다.
    지금은 모든 가족이 행복하게, 조금은 버겁겠지만, 지내고 계시리라 믿고 저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신 글과, 글쓴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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