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형 | 윤희에게

한국의 대중문화예술산업에서 중년 여성의 서사를 찾기 힘든 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젊음에 대한 무분별한 추앙은 예전부터 오래 지속되어 왔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염색을 시도하는 중년의 남성만큼이나 머리를 길게 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중년의 여성을 발견하는 것이 무척 쉬운 사회가 이 곳이지만, 여성이 젊음을 놓지 못하는 과정에는 강제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이 문제는 성별을 좀 분리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나 TV 등 대중매체에 중년의 남성이 노출되는 빈도, 혹은 작품의 서사에서 나이 지긋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년 여성의 그것과 감히 비할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잘생기지도 않고 젊음을 유지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여성의 경우는 이와 같은 중년으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이 쉽게 용인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페미니즘이 적극적으로 소개된 이후 젊은 여성의 서사는 이제 어느정도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진 반면, ‘여성의 젊음’을 상실한 중년 이후 여성의 삶에 대한 묘사는 여전히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업소’때문이 아닐까 싶다. 획일화된 육체적 매력을 기준으로 여성을 ‘텐프로’, ‘쩜오’ 등의 등급으로 나누는 문화가 남성중심사회에 만연해 있고, 여성 역시 이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갇혀 버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조금 푸석하더라도 흰 머리를 길게 기른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은 대중매체에 그러한 여성상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비정상적인 패턴이 세대를 거듭하며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윤희에게]는 이처럼 척박한 한국의 대중예술산업에서 보기 드문 중년 여성 서사를 그리고 있다. 심지어 퀴어 영화다.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제한된 플랫폼에서만 소비된다는 점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이러한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리고 그 결과물이 영화적으로 썩 괜찮다는 점에서 조금은 주의깊게 기억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윤희에게]의 주인공은 윤희라는 가난하고 못 배운 중년 여성이다. SK2의 모델로 오래 활동한 배우 김희애의 육체를 빌어 탄생한 인물이기에 ‘태초부터 아름다움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치명적인 비정상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어쨌든 영화 내 설정을 보자면 오빠를 뒷바라지하느라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어떠한 연유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한 여자다. 한마디로 선택하지 않은 불행을 오랜 기간 견딘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혼한 듯 보이는 그녀에게 유일한 삶의 의미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려 하는 딸인데, 이 딸이 영화의 두 축을 이루는 윤희와 그녀의 옛사랑인 일본인 여성 준을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준은 윤희와 달리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에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는 고모,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오타루 지역에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윤희처럼 준에게도 결여된 것이 있는데, 어머니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감추고 살았다는 부채의식과 그로 인해 어그러진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준은 오랫동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상대인 윤희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는 준의 고모와 윤희의 딸에 의해 잘 전달되어 윤희 모자의 갑작스러운 일본여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어쩌면 단순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직선적인 플롯이 영화적으로 풍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먼저 윤희, 준, 윤희의 딸, 준의 고모, 그리고 윤희 딸의 남자친구 등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이 다층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며, 둘째, 영화의 구성이 번잡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서사를 충실히 보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라운관에서 정극을 오래 해온 김희애와 아이돌 출신으로 연기에 막 몸을 담근 김소혜가 한 프레임에 잡히는 씬이 많은데, 이 둘의 연기톤이 어긋나는 경우가 가끔 발견되어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데가 없는 편이다. 들끓는 감정을 오랜 세월 억누르고 살아온 윤희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매우 절제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참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오타루라는 (윤희 입장에서) 이질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판타지적인 느낌이 노골적으로 스며나온다는 점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가제가 [만월]이었다고 한다. 윤희와 준 모두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곁에는 딸과 고모 등 연대가 가능한 가족이 있었지만, 결국 이 둘을 조금 더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었던 상대는 서로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 절절한 감정을 깔끔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끔은 너무 깨끗하고 모범적인 시선이라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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