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바움백 |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감독을 ‘작가’ 반열에 올리는 영화팬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프랜시스 하]로 화려하게 복귀하기 전까지는 웨스 앤더슨과의 협업으로 더 많이 알려졌고, [프랜시스 하] 이후 내놓은 작품들도 기대에 많이 못미쳤기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았을까, 하는 점이 사실상 내가 그에 대해 가진 거의 유일한 궁금증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나온 [결혼 이야기]는 그의 영화 커리어에 하나의 전기로 기록될만하다. 정식 개봉 전부터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혔고, 두 주연 배우의 호연 만큼이나 감독의 치밀한 조립능력과 치열한 시선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는 매우 뛰어나다. 과거 보아왔던 노아 바움백의 영화들과 그 무게감에서 차원을 달리 할 뿐 아니라 영화의 ‘결’도 전작들과 살짝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각본이 갖는 무게감이 전작들과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상당히 일찍 캐스팅된 두 주연배우, 그리고 또 다른 여성작가와 함께 각본을 함께 구성했다고 하는데, 이 덕분에 과거 바움백 영화들이 고질적으로 드러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문제에서 탈피한 것처럼 보인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류승완 감독의 영화 중 거의 유일하게 서사라는 형식을 가진 [부당거래]가 류감독의 손을 거치지 않은 각본 덕분에 탄생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또다른 이유라면 바움백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인 바움백은 이혼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출신의 그레타 거윅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본인의 이야기이기에 조금 더 깊은 수준에서 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노아 바움백은 이 영화를 통해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이 작품 이후 바움백의 필모그래피가 엄청 화려하고 멋질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갖지 않게 된다. 이 영화는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라는 두 걸출한 배우가 바움백의 디렉팅과 만나 환상의 합을 보여주는 와중에 탄생한, 행운과도 같은 작품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그녀는 [어벤저스] 시리즈 등으로 소모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우 뛰어난 연기파 배우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스스로 증명해낸다. 그동안 헐리우드 팝콘 무비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들었던 복잡한 내면연기를 영화 내내 보여주는데, 한 배우의 절정을 목격한 느낌이 들어 감사한 마음마저 생겼다. 아마도 바움백이 후세에 칭송을 받는다면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좋은 배우의 대표 영화를 연출했다, 라는 이유가 반드시 따라올 것이다. 아담 드라이버는 요즘 상당히 자주 접하게 되는 배우인데, 그만큼 작품 고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고 배우로서의 역량도 최고조에 다다른 듯한 인상도 받지만, 이 영화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연기를 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패터슨]에서의 아담 드라이버가 훨씬 좋았다. 다만 극중 찰리의 LA 임시 거처에서 요한스닝 분한 니콜과 격정적으로 싸우는 시퀀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훌륭했다. 영화에서 좋은 액션을 받쳐주는 것은 좋은 리액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애덤 드라이버는 참 좋은 배우임이 확실하다. 아마도 많은 여성 관객이 좋아할 니콜의 변호사 노라 캐릭터는 주변에서 들어온 호평만큼 깊게 와닿진 않았다. 주도면밀한 비즈니스맨 그 이상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상으로 캐릭터에 깊이 빠진 팬들이 많아 그 이유가 오히려 궁금해졌다. ‘위닝 워먼’에 대한 판타지 때문인지, 혹은 그런 캐릭터가 전시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쾌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에 존재하는 이런 여성은 ‘위닝 비즈니스워먼’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닌 경우가 많다.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이제 우리가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이 영화의 주제라던가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궤적 위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졌다. 니콜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절절하게 이해가 되었으며, 찰리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이혼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니라는 점, 찰리가 뉴욕과 그의 극단에 집착하며 LA를 적대시하는 점 모두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었다. 찰리가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니콜이 조금만 더 일찍 자신을 아끼고 희생을 거부했다면, 이 부부는 슬기롭게 위기를 겪지 않고 계속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멍청한 한 부부가 우스꽝스럽게 이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분히 사려 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족을 지극히 아끼는 한 부부가, 결국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에 가로막혀 고통스러운 이혼과정을 감내해가는 이야기다. 영화의 포스터처럼 한 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삶과 가족이 이제는 극복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장벽으로 다가올 때,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말은 그 자체로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런건 없다. 그 누구도 어른이 될 수 없다. 다만 조금씩 더 배워나갈 뿐이다. 그래서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영화는 바움백의 전작들이 했던 그런 이야기를, 아주 현명한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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