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램지 | 너는 여기에 없었다

린 램지 감독의 전작 [케빈에 대하여]는 보지 않았다.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이 영화를 볼 기회가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인 시놉시스를 읽은 후 그 영화를 봐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보지 않았다. 영화를 감상한 후 어떤 감정이 들어설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느끼게 될 그 감정이, 해야 할 그 이야기가 싫었다. [킬링 디어]를 보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때문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깔의 영화들이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도 원래 나의 영화취향에 따르면 챙겨 볼 확률이 극히 낮은 쪽에 속하지만, 출근길에 들었던 [김혜리의 필름클럽] 팟캐스트에서 김혜리 기자가 그녀가 평소에 구사하지 않는 상당히 예외적인 표현을 동원해가며 찬사를 보냈기에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특히 그가 [드라이브]를 두어번 반복해서 언급했을 때(비록 그것이 조니 그린우드의 영화음악에 대한 묘사였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 영화를 집에 가자마자 꼭 챙겨봐야겠다 마음먹게 되었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감독/각본을 담당한 린 램지와 화면을 꽉 채운 주연배우 와킨 피닉스와 영화의 청각적 요소를 담당한 조니 그린우드, 이 삼총사가 빚어내는 호흡이 특유의 흥미로운 리듬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영화의 서사구조는 단순하며 관객에게 주는 효과는 직관적이다. 전직 군인으로 추측되는 ‘조’는 해결사로 일하며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 거의 매일 자살을 시도하는데, 어머니가 살아있는 한 정말 자살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가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린 시절 겪었던 학대와 군인 시절 경험한 살인, 혹은 죽음에 대한 경험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의 회상으로 그려지는 이와 같은 과거 장면들은 찰나의 시간동안 단편적으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과거 회상씬 뿐 아니라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조’, 혹은 그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으로 처리되는데, 그러니까 영화는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진행이 되거나, 그런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서사구조가 헐겁다고 느끼는 관객이 있을 수 있으며 영화의 단순한 서사구조만을 따라가다 금세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친절하게 선후관계를 설명해주기보다 한 상황을 넌지시 제시하고 관객에게 많은 것을 추측하게 만드는데, 그 설계가 꽤나 촘촘하게 이루어져 있어 영화 속 상징을 오독하거나 숨어있는 서사를 놓치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빈틈이 많기 보다는 비어있는 공간을 관객이 적극적으로 채워나가게 하는 매력이 있는 영화인 셈이다. 음악으로 치면 The XX의 1집 음반같달까. 이 묘한 ‘비어있는 꽉참’은 독의 연출과 피닉스의 연기, 그리고 그린우드의 음악/음향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영화의 제목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그 자리에 없는 것으로 추정되어야 하는 해결사 직업을 가진 ‘조’의 삶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조금 더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 ‘조’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어머니와 가졌던 관계성을 전이시키게 되는 ‘나나’와 함께 떠나게 되는 새로운 여정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가 맞이하는 터닝포인트는 ‘조’가 현역 주지사의 심복인 상원의원으로부터 그의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뒤 어린 소녀들을 감금하고 유린하는 사창굴로 찾아 들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안에 ‘나나’가 있다. ‘나나’의 발견은 ‘조’의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귀결되고, ‘조’는 자신과 같은 괴물로 변해버린 ‘나나’와 함께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상원의원과 주지사가 사망한 이 꽤 큰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는 ‘조’와 ‘나나’가, 현역 경찰관까지 매수되어 아무한테나 함부로 총질을 해대는 이 세상에서 전과 같이 온전히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디로 갈지 알 수도 없으며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조차 없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나나’는 “날씨가 참 좋다”고 웃으며 말하고, 아마도 ‘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 정도일 것이다. 즉, 그들은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죽음으로 가고 싶어했던 한 사내가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 했던 어떤 존재를 상실한 후, 사실상의 죽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그리 틀린 설명은 아닐 것이다.

연출은 감각적이다. 피닉스의 연기는 여전히 훌륭하다. [마스터]와 [그녀], [조커]를 지나 [너는 여기에 없었다]까지 다다르니 살짝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 얼굴보다 황정민 얼굴을 더 많이 볼 때의 피로감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가 다작을 한다고 사실때문에 그의 연기력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조니 그린우드의 영화음악은 [데어 윌 비 블러드]에 비하면 훨씬 정교하고 노련해졌다. 그래서 그 당시의 참신한 맛은 많이 사라졌지만, 이제는 정말 당당히 당대 최고의 영화음악가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린 램지의 영화는 처음 접했는데, 호불호가 갈릴 법한 방법론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저력이 느껴져 오히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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