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 | 경계의 음악

[경계의 음악]은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음악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클래식 음악 비평을 모은 음악비평집으로,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약 20년에 가까운 사이드의 평론을 모아 집대성한,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지난 여름부터 책상 위에 두고 약 3개월여에 걸쳐 읽었는데, 그 이유는 책이 두꺼워서라기 보다는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까워서였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이 책에 수록된 그의 글은 주로 [더 네이션]과 같이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비평잡지에 수록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분량 자체는 그리 길지 않지만, 그 짧은 평론글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느린 호흡으로 음미하며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풍부한 배경지식과 깊은 성찰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하루에 두편, 혹은 세편 이상의 평론을 읽는 것이 벅차게 느껴졌으며, 한 편의 평론에 포함된 음악가의 음악을 듣고 관련 정보를 더 찾아 본 후에야 사이드의 평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에선가 언뜻 김애란 작가도 이 책을 집 안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디저트를 먹듯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읽어내려갔다는 내용을 접한 기억이 있다. 실로 이 책은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클래식 음악과도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른다. 지식을 과시하는 용도로 음악을 활용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쪽이지만, 무언가에 대해 ‘안다’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함께 실제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인류가 쌓아올린 가장 견고한 예술적 성취 중 하나인 클래식 음악을 그저 피상적으로 접해온 것에 대해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사이드의 평론은 이러한 나에게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교과서적인 지침을 전달해줌과 동시에, 음악이라는 무형의 예술을 평가하는 방법론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가르침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사이드는 특히나 클래식 공연 비평에 공을 들였는데, 기록으로 영구히 남게 되는 음반과 달리 공연은 그 이벤트가 행해진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휘발되어 버린다는 특수성이 있으며, 사이드는 그 특수성을 면밀히 포착하여 당시 ‘현재’에 존재했던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까지도 생생하게 기록하고 분해한 뒤 그 안에 숨은 음악적 의미를 철저히 파헤친다. 사이드 평론의 또다른 특징은 당대의 걸출한 음악가 모두 그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칭송하는 연주자, 지휘자, 음악학자 모두 사이드 앞에서는 그저 수많은 단점을 가진 존재일 뿐인데, 단순히 깎아내리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사이드만이 가진 철저한 기준 위에서 단단한 논리를 가지고 행하는 비판이기 때문에 건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욕을 먹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그런 수준의 비판이다. 마지막으로 사이드의 비평은 지역적인 특성을 지닌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태인의 시오니즘에 반대해온 그가 반유태주의로 유명한 바그너의 음악을 면밀히 관찰한다는 그 형식 자체로 이미 책의 전반부부터 충분한 흥미를 자극하는데,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연주자 겸 지휘자 바렌보임이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여 불러일으킨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 다다르면 그의 시선이 매우 객관적으로 정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현대의 지식인들이 가끔씩 놓치게 되는 대목들, 예컨대 다수의 대중에 휩쓸려 소수의 천재가 곤궁에 처할 때 그를 구출해주지 못하는 비겁함 등에 대해서까지 지적하는 모습을 통해 촘스키의 표현대로 “지행합일의 모범”으로 추켜세워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에서 사이드가 비판하지 않고 오직 칭찬만 늘어놓은 유일한 음악가인 글렌 굴드의 음악을 반복해서 틀었고, 미처 구입하지 못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반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음반목록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바그너의 오페라 선집을 꺼내들었으며, 브루크너, 쇤베르크, 바르톡 등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현대음악가들의 음반 역시 위시리스트에 올려 놓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이 극적으로 넓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 적은 것처럼 비록 조심스러울지언정 새로운 세계로 한걸음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미 큰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무척 뛰어난 번역가에 의해 번역되어 있다는 점을 꼭 기록해두고 싶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는 내내 번역으로 인해 미간을 찌푸리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을 정도로 유려한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읽는 기쁨이 더욱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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