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소설가의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는 좋은 문장들이 넘실거린다. 당대 최고의 작가와 자신의 문장사전을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똑같은 순간을 포착하고 느꼈음에도 난 왜 저리 아름답게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매한 내 머리를 자주 흘겨보게 된다. 김애란의 글은 참 좋다. 300쪽 가까운 책을 읽으며 단 한번도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순간을 마주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히 그와 내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도 고깝게 생각하지 않고 그의 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김애란의 글이 가진 또다른 힘 덕분일 것이다. 진심. 그의 글에서는 항상 진심이 느껴져서 좋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글에서 [두근두근 내인생]의 모체를 목격하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되고, 동료 작가를 묘사하는 글에서는 타인에 대한 진득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느낌이라 그 묘사의 대상을 전혀 모르는 나까지도 덩달아 애정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만 같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글, 용산참사 유가족을 바라보는 글에서는 역설적으로 그와 같은 인간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주고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가운 반지하방같은 현실을 드러내는 문장 속에서도 꿋꿋하게 스며든 유머나 긍정의 힘 뿐 아니라, 모든 문장에 대해 오롯이 책임을 지려 하는 그의 꼿꼿한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이 한국사회를 함께 살아주어서 참 고맙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뒤에 서서 독자와 약간의 거리를 둘 수 있었다면 수필은 독자와 직접 마주 대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는데, 독자인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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