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라 젠킨스 | 프라이빗 라이프

최근, 그러니까 몇 개월 전 우리 부부는 임신을 했다. 2016년 말 결혼 이후 약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가진 아이인데, ‘첫 아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한꺼번에 생긴, 약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새로운 생명으로 인해 우리 가정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부부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이번 임신을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고작’ 결혼 후 2년 반 만에 가진 아이였다.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한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불과’ 몇 개월 간의 실패(그러니까 부모 양 쪽의 몸으로부터 출발한 난자와 정자가 정해진 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만나지 못한 결과로 조용히 각자의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이쪽 업계에서는 보통 실패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끝에 임신을 하게 되었으니,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난임, 불임 부부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우리 부부는 상당히 무난하게 임신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몇 개월의 ‘실패’의 기간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함께 많이 울었고, 또다른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새롭게 공부해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성교육 시간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여성의 ‘주기’와 착상 등의 정보에 예민하게 집착했고, ‘정상’적인 방법에 의해 임신이 힘들다는 판정받을 경우 받아들여야 하는 여러 대안들을 준비해야 했다. 인공수정, 체외수정, 난자기부 등 다양한 기법들을 먼저 경험한 부부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그들이 겪은 고통을 마음 속으로 나누기도 했고, 우리가 대체 얼마나 큰 행복을 얻으려고 이 고생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아마 우리 부부만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부부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었고, 이 세계에 미리 들어와 고군분투 중인 수 많은 엄마, 아빠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프라이빗 라이프]는 넥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로, 타마라 젠킨스라는 감독이 자신이 직접 쓴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감독의 전작들을 본 적은 없지만 이 영화가 발표된 해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로 손꼽혔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고, 최소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올라갈 정도의 작품은 꼭 보고 싶어하는 성미 덕분에 넷플릭스 위시리스트에 오래 전부터 올려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영화의 줄거리가 우리 부부가 최근 겪어온 현실과 지나치게 가깝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예술은 현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지만 관객이 속해있는 현실과 지나치게 가까울 경우 오히려 그 관객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영화란, 현실에 기반하여 제작하되 어느 정도의 추상화(abstraction) 과정을 거쳐 보편화, 일반화(universalization)시켜야 비로소 관객이 조금은 마음을 놓고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실을 환기시키되 현실로부터의 도피처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조금은 복잡한 영화의 속성 때문에 우리같은 ‘기피’관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프라이빗 라이프]의 주인공 레이첼과 리처드 부부는 뉴욕에 사는 40대 중산층으로, 거실 한켠에 쌓여 있는 주사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도 꽤 오래 전부터 임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듯 보인다. 두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면서 각자의 직업도 충실히 꾸려오고 있는 부부지만, 오직 삶에서 아이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둘을 임신에 대한 “집착”으로 이끌게 된다(영화 속 이들 부부와 친한 친구 부부 간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영화는 인공수정과 입양이라는, ‘정상’적인 임신방법을 통하지 아니하고 아이를 가정에 들일 수 있는 ‘대안’을 마주하게 되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주된 서사로 다룬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체외수정의 건조한 각 단계가 하나의 챕터를 형성하는 가운데 인공수정을 위해 한 부부가 겪어야 하는 끔찍한 병원에서의 체험이 긴 인트로처럼 보여진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타인의 난자를 제공받아야만 하는 상황과 과거 입양을 시도했으나 어이없는 이유로 실패한 사연 등이 순차적으로 보여진 후, 영화는 일종의 순환고리와 같은 구조로 부부의 ‘반복되는’ 삶을 조금씩 뒤틀어 다시 보여준다. 과거에도 수많은 시도를 했고 실패를 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밝힌 후, 이 부부가 또 한번의 실패를 겪는 과정을 영화의 주된 서사구조로 활용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또 다른 시도의 첫 출발점을 보여줌으로써 이 부부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을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것임을 적극적으로 증명하고 예언하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조카 세이디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 떠들썩한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된 후, 주인공 부부인 레이첼과 리처드는 다시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반복되는 삶을 경험하지만, 큰 사건을 겪은 그들의 삶은 더이상 전과 같지 않다. 그 예로 할로윈 기간 사탕을 얻기 위해 부부의 집을 찾아온 꼬마들을 대하는 부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들 수 있다. 오직 임신에만 집착하여 동네 꼬마들에게 사탕 하나 내어줄 마음 속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이들이 닉슨과 힐러리 클린턴의 가면을 쓰고 아이들에게 어떤 분장을 했는지 물어볼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영화는 딱 이정도의 성장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50대의 문턱에 다다른 중년의 부부가 아이의 ‘결여’를 내적으로 극복해내는 과정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사실 그렇게 극적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동안, 충분한 고통과 아픔을 감내하며 아주 서서히 성장하는 가운데 이겨내야 하는 것이 보통의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의 과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상당히 현명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나름대로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절실히 기다렸던 아이가 이번달에도 오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 고통은 커져갔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을 찍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남들은 다들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임신이라는 것이 왜 우리에게만 이토록 어렵게 오는지 괜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쌍둥이를 아내의 배에 가득 안은 지금,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왜 그렇게 오버했나’ 싶어 금세 부끄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 그 자체임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 모두는 아이를 갖던 갖지 않던,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그 어떤 상황에 있건, 매우 미숙하고 어리석은 존재다. 그 미숙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과 아주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인생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느린 속도로 어떤 방향성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도 맞다. 거북이처럼, 달팽이처럼, 조금씩 인내하며 움직이다보면 어떤 지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임신의 과정을 통해 이 교훈을 조금 더 배웠다. [프라이빗 라이프] 역시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6 thoughts on “타마라 젠킨스 | 프라이빗 라이프

  1.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 생겼네요! 축복합니다.
    아직 총각이라 잘 모르겠지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하니 진심으로 아내를 그리고 아이를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열심히 잘 키워보려구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이니만큼 우선 이 세상에 정상적으로 착륙할 수 있도록 힘써보겠습니다.

  2. 간만에 블로그 들렀다가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네요. 쌍둥이라니 간절함이 커서 신이 쌍둥이를 만들어주셨나 봅니다 ㅎ 임신 기간 동안 두 분 모두 건강하시고 아이들 또한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원합니다.

    •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만 태어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그저 맘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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