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언노운 걸

다르덴 형제는 변화하고 있다. 전작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어슴프레한 희망을 내비쳤던 이들은 [언노운 걸]에서 본격적으로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작과 이번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잘 알려진 전문배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일텐데, 이와 함께 이 두 영화를 다르덴 형제의 필모그래피의 다른 영화들과 구분지을 수 있는 지점은 희망의 메시지를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적 시선의 변화에 있다.

젊고 유능한 의사 제니 다방은 이제 막 3개월 임시 주치의 생활을 마치고 꽤 좋은 조건을 제시한 큰 병원으로 옮길 참이다. 하지만 마침 그날 저녁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같은 병원에서 수련의로 있던 인턴 줄리앙에게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사로잡혀 몇 마디 쓴 소리를 하던 와중 밖에서 들려온 벨소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병원 문을 닫은지 한 시간 지난 뒤 찾아온 손님을 웬만해서는 받아들이는 그녀였지만, 왠지 그날따라 줄리앙을 훈육시킬 목적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외부의 손님을 거부한 것이다. 줄리앙은 무언가를 느낀채 화가 나 뛰쳐나가고, 제니는 다음날 자신을 찾아온 형사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이 거부했던 그 손님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젊은 흑인 여자였고, 그날 밤 병원으로 들어가려는 요청이 거부된 뒤 근처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큰 병원으로부터의 이직을 거부한채 임시 주치의로 있던 병원을 아예 물려받기로 결심하고, 그날로부터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한채 죽어야 했던 흑인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와 함께 자신에게 심하게 혼난 후 의사로서의 꿈을 꺾은 제자 줄리앙을 찾아가 다시 의사의 길을 걸어갈 것을 설득한다.

사회의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에 위치한다고 보아야 할 위태위태한 영혼들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대표적인 중산층 직업인 의사의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속 인물의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다르덴 형제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빚어내는 윤리의 위기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이 윤리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역시 사회의 구성원 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감정들이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는 죄의식, 죄책감, 부채의식과 같은 감정들인데, 영화가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 지점 역시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에서 익히 보아온 바대로, 죄책감을 느낀 주인공의 마음 속으로부터 출발한다. 환자들을 프로페셔널하게 치료하는 것에만 집중하던 제니는 자신의 무신경함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 여성의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속죄와 참회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실 어쩌면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우연한 기회를 맞이하여 마음속에서부터 그 감정을 꺼내는 과정을 겪었을 뿐이다.

그녀가 짧은 순례의 길을 걷는 동안 마주치는 세상은 그녀에게 새로운 차원의 구원과 자유를 경험하기에 충분한 순교의 고통을 선사한다. 서류가 미비되어 원하는 치료를 받지 못하자 제니를 위협하는 사람도 있고, 제니가 타고 가던 차를 억지로 세운채 더이상 깊게 파지 말라고 협박하는 사내도 있다. 윤리가 결여된 세상에서 그녀가 걷는 속죄의 길은 의사라는 직업적 특수성과 결부되어 영화의 주제의식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늘 환자의 부름을 받는다. 환자가 있는 곳에는 언제, 어디라도 뛰어간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자신을 찾아온 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때문에, 더이상의 늦은 시간 벨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아예 잠자리를 병원으로 옮겨 새우잠을 청한다. 비록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환자가 죽음의 비밀을 감추려는 사람, 자신을 위협한 사람이라 해도 제니는 왕진가방과 함께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순간, 공권력으로부터도 경고를 당한 그녀에게 이름 모를 여성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고, 제니가 쌓아올린 속죄와 참회의 마음을 나누어담는다. 이것이 영화 속 작은 기적일까. 영화의 마지막 씬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또 다른 환자를 맞이하는 제니의 모습을 담는데, 이 장면에서 비로소 제니도 구원을 얻은 것처럼 보이고, 그녀가 속한 세계에서 자유를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제니가 정성을 쏟은 또다른 인물인 줄리앙이 전해준 기쁜 소식은, 제니가 구축하려 한 세계가 다음 세대로 전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친다.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다르덴 형제 영화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선사하는 희망찬 메시지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다르덴 형제의 오랜 팬들이 가질법한 또다른 불만은, 제니가 당면하는 과제들이 어쩌면 쉬워보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생존의 경계에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윤택하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베푸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며, 그녀는 단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어떤 여성에게 가지는 죄책감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을 행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지점이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을 위한 시간] 이전까지의 영화들은 너무나 극한 상황에 몰린 이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 인물들이 선택하거나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어떤 상황들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면이 다소 존재했다. 리얼리즘이라고 하지만 너무 극적인 것이다. 하지만 [내일을 위한 시간]과 [언노운 걸]은 결이 조금 다르다. 얼굴이 많이 알려진 전문 배우가 화면을 가득 채운 이 영화들은,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을 미묘한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보통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가 과감히 마리옹 꼬티아르와 아델 아에넬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보통의 관객들에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기 위해서는 이런 배우들이 아니면 안되는 거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나가는 아델 아에넬의 연기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표정 하나, 동작 하나에서 제니의 고뇌가 느껴진다. 다르덴 형제의 원래 방식대로 무명의 연기자를 캐스팅했다면 어쩌면 매우 위험해질 뻔한 영화였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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