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 노후 대책 없다

영화는 홍대 놀이터 앞에서 공연 중인 한 펑크밴드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와 차라리 소음에 가까운 디스토션 기타, 드럼을 때려부수기 위해 스틱을 휘두르는 듯한 드러머 등이 어우러진 이 4인조 하드코어펑크 밴드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의 두 주인공 중 하나인 파인더스팟이고, 영화는 또다른 주인공 스컴레이드와 파인더스팟이 함께 떠나는 짧은 여정을 함께 한다. 영화의 감독이자 카메라를 주로 들고 있는 촬영감독이기도 한 이동우 본인이 밴드의 멤버이기도 하다. 멤버들의 인터뷰와 공연장면이 교차 편집되는 기본 구성에 로-파이 가득한 홍대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가득 품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굳이 서사구조가 있다면, 두 밴드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작은 하드코어펑크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겪게 되는 크고작은 소동들의 연대기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비추어지는 한국의 하드코어펑크씬은 규모가 그리 커보이지는 않는데, 어쨌든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맺어지고 열정이라던지 실망과 같은 구체적인 감정들이 오고가는 와중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 사는 젊은이 몇몇이 멀지만 가까운 해외로 나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무언가를 느끼고 돌아온다. 언뜻 보면 ‘일베’같아 보일 정도로 입에서 욕이 떠날 때가 없으며, 때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답없는 젊은 세대의 망가진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멤버들은 번듯한 직업이 있거나, 사회운동을 하다 감옥에 들어갈 처지에 놓였거나, 오래전부터 꾸준히 일관된 프로젝트에 몰두하거나 하는 식으로 각자의 세상을 소중히 꾸려온 사람들이다. 부모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이지만 최소한 자신의 생계는 스스로 꾸려가기 위해 노력하며, 사고를 쳐서 직장에서 잘렸다면 편의점에서라도 그 삶을 이어가려 애쓴다. 이들이 말하는 ‘펑크’정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군대 휴가를 나와 술에 취한 나머지 멀쩡한 식당의 수족관을 깨부순 이가 몇 달 뒤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가게 사장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은 ‘한국’의 특수성과 어떻게든 타협해보려는 ‘펑크’의 모습처럼 읽히기도 한다. 중간에 단편선과 같은 꽤 유명한 사람도 등장하는데, 이들이 언급하는 여러 무거운 이슈들은 두 밴드 멤버들의 어처구니 없이 웃긴 모습에 치중하던 전반부에서 어느정도의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제법 진지해지는 영화의 후반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영화에 따르면, 스컴레이드와 파인더스팟,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는 동지들은 나름의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예술인’들이며, 자신들의 시선에서 충분히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름의 행동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행동하는 지성인들이다. 물론 이들의 행동이 사회의 평균적인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는 또다른 문제이지만, 절망보다는 희망을, 냉소보다는 연대를, 말 뿐인 위로보다는 현장에서의 행동으로 상징되는 이들의 모습이 마냥 ‘대책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펑크라는 음악장르가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폭력성, 혹은 남성중심주의의 한계는 영화 속 밴드들의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밴드 안에 여성멤버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공연장면과 인터뷰장면에서 강하고 그릇된 형태의 남성성의 발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정작용을 바라는 것은 씬의 특징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무리이겠지만(실제로 SNS를 통해 감독 및 출연진의 성추행 의혹 논란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한계까지 적나라하게 관찰된다는 점에서는 영화가 갖는 또다른 의미가 없지는 않은 셈이다.

2016년 이 영화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결국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기존에 존재하던 정적인 방법론에서 과감히 벗어나 날 것 그대로의 ‘펑크’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론을 택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영화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밝은 편이다. 멤버들이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전전긍긍해 하지만 않는다면, 노이즈 가득한 기타사운드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마지막까지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영화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