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e Tempest | The Book of Traps and Lessons

새로운 음악을 소개받는 몇몇 소스 중 가장 선호하는 매체 중 하나인 NPR의 [All Songs Considered] 팟캐스트를 통해 케이트 템페스트(Kate Tempest)의 세번째 음반 중 선공개된 “FIresmoke”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차 안에서 운전 중이었는데, 저녁 늦게 퇴근해 막 학교를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당시 이 노래를 듣고 받은 충격이 어마어마했는데, 잠시 차를 세워둘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팟캐스트 진행자인 밥 보일린은 1년에 약 500회(!) 정도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노래를 소개하며 무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공연”으로 케이트 템페스트의 SXSW 공연을 꼽았다. 이후 나는 한동안 이 노래만 들었다. 이 노래만 들으며 새 음반이 어서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먼저 발표된 두 장의 음반은 모두 머큐리 음악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전력이 있다. 발표한 모든 정규작이 그 해 영국에서 발매된 대중음악 음반 중 그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어마어마한 레쥬메를 가진 그녀가 발표한 세번째 음반 [The Book of Traps and Lessons]는 템페스트 커리어 최초로 미국인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릭 루빈이 누구던가. 데프잼(Def Jam) 음반사를 차리고 비스티 보이스나 런 디엠씨의 음반을 제작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기묘한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케이트 템페스트의 이름을 검색하면 많은 매체들이 그녀를 어떻게 분류할지 엄청난 고민을 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선 그녀의 음악을 힙합의 범주에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첫번째 음반 [Everybody Down]은 상당히 전형적인 힙합 음반이었으므로 그들의 범주화가 틀렸다고 하긴 힘들다. 그녀를 ‘spoken words’ 쪽으로 분류하는 매체도 많다. 두번째 음반 [Let them East Chaos]에서 ‘배경음악’의 형식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목소리를 랩으로 볼지, 낭송으로 볼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내뱉는 문장, 혹은 이야기들이 대단히 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그녀를 시인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바람직해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음반 뿐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인간관계의 단절과 고독,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세계의 몰락과 같은 비관적인 인식이 우선 존재한다. 그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청자에게 말을 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가라고. 어떻게 하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템페스트가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이토록 잔인한데. 나는 이 ‘잘’에 해당하는 디테일이 템페스트 음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99%의 비관 속에 피어오르는 1%의 희망. 그걸 절묘한 단어의 조합으로 전달하는 음악이 케이트 템페스트다.

[The Book of Traps and Lessons]에서는 힙합비트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배경음악을 완전히 배제하고 템페스트의 목소리만으로 진행되는 트랙이 있을 정도다. 올드스쿨 힙합의 대부 릭 루빈과 함께 작업했기에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신서사이저 건반이 템페스트의 가장 든든한 동료다. 그녀의 낮은 목소리와 신서사이저의 불길한 사운드는 세기말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심지어 음반은 11개의 트랙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구성되어 있다. 음반 제목처럼 한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음반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는 “Firesmoke”에서 잠시 숨을 돌리기 전까지(이 노래가 음반 전체에서 가장 밝고 긍정적이며 활기찬(..) 트랙이다) 이야기가 쭉 한 호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음반을 듣다보면 어깨가 살짝 경직될 정도다. 빠른 속도로 몰입해 들어가 상당히 깊은 차원까지 내려가는 심리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녀가 하는 말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사집을 보며 더듬더듬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실로 ‘시인’에 가까운 예술가라는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대중음악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완전한 문장을 경험하는 일도 참 드물다. “Firesmoke”보다 뛰어난 노래를 올해 발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2 thoughts on “Kate Tempest | The Book of Traps and Lessons

    • 저도 한 곡 듣고 빠져서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음반을 찾아 듣게 된 경우입니다 ㅎ 훌륭한 아티스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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