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존슨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018년 넷플릭스 월드에서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화제성만큼 충분히 귀엽고 재미있는 영화다. 한국계 작가 제니 한(Jenny Han)의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방어막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십대 소녀의 달뜬 마음을 유쾌하고 거침없이 풀어낸다. 주인공 라라 진은 한국계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지만 백인 아버지, 두 자매와 함께 씩씩하게 생활하는 전형적인 아시안-어메리칸 십대 소녀다. 주인공의 ‘전형성’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드러나는데, 이건 백인 주류사회가 바라보는 모습이기도 하고 실제 한국계 미국인 학생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받는 측면이 크다. 라라 진 뿐 아니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주요 캐릭터들이 사회적 관습과 고정관념에 기반한 전형성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데, 겉으로는 자상한 아버지이지만 딸들의 개인사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백인 가장 아버지, 백인-미남-운동선수-인기남 vs (역시)백인-(역시)미남-내성적인 독서광-비인기남 구도의 남자친구 선택 결정 과정, 주인공의 든든한 지원군인 친구들은 화장을 짙게 한 별난 동성친구와 흑인-게이 이성친구라는 점 등이 그러하다. 물론 영화는 이런 전형성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적 관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면서 캐릭터 구성에 쏟을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한편, 서사구조를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비트는 쪽에 집중하여 나름의 독창성을 구현해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의 ‘공감’일텐데, 그 부분에서 훌륭하게 성공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곁가지 없이 깔끔하게 구성된 서사구조 위에 주인공 역을 맡은 베트남계 라나 콘도르(Lana Condor)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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