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아 |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아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나의 부모님은 항상 개와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화정리 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은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옛 화정리는, 우리가족이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처음으로 흙냄새의 소중함을 깨달은 곳이다. 이 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일구는 기쁨을 만끽했고, 누나와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논두렁을 뛰어다니거나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누나가 이마에 작지 않은 크기의 흉터를 갖게 된 것은 그 시절 하수구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고, 내가 아버지와 누나에게 시계 읽는 법을 배운 것도 그 즈음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우리 가족 주변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진돗개일 때도 있었고 ‘잡종’일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항상 개를 선물해주는 지인이 있었고, 그 분 덕분에 우리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1년도 쉬지 않고 우리는 개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 가족을 거쳐간 개의 수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은 함양 산골자락에 자리잡은 부모님댁에 잡종견 두마리와 골든리트리버 한마리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열마리가 넘는, 한 때 우리의 가족이었던 그 개들의 이름을 아직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이었으니까. 무척 사나워서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진돌이, 유난히 듬직하고 속이 넓어서 함께 살던 다른 개들까지 보듬어 주었던 복실이, ‘아픈 손가락’이었던, 작고 작고 작았던 미니, 인간만큼이나, 아니 대부분의 인간보다도 더 지혜로웠던 뽀미.. 어느 카툰에서처럼, 그들은 나를 하늘나라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결론은 항상 명확하다. 그들은 인간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만, 그 가족은 아버지나 어머니일 확률이 높다. 최소한 나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매일 밥을 주던 사람도 아니었고, 매일 그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사랑을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다. 개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고,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개에게 살짝 인사만 한 뒤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들의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못난 가족이었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천국에서 개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대체로 이런 형식이었다.

“개들때문에 일찍 들어가봐야 해”

“개들 밥줘야 해서 너 못 만난다.”

“개가 심심해 하니까 좀 와서 놀아주면 안되겠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누나와 나, 그리고 개는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진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개는 개일 뿐, 인간과 결코 동급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개집을 매 계절 새로 만들어주는 사람도 아버지이고, 늦은 밤 목줄을 끊고 산속으로 산책나간 개를 찾아 몇시간을 헤매는 사람도 아버지이다. ‘서양식’으로 인간과 개가 반드시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만 가족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많은 한국인은 개를 가축의 한 종류로 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개에게 쏟는 애정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나와 나를, 그리고 캐를 키우셨다. 누나와 내가 독립된 가족을 만들어 곁을 떠난 뒤에도 부모님은 계속 개를 키우신다. 개와 함께 살아가신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겨진 모습을, 함께 사는 개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하고, 그분들의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기도 하다.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은 개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글 쓰는 일을 퍽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은이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녀의 아기가 툭툭 던지는 보석같은 말들과 늙은 개가 가지런하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이다. 단지 그것들을 엮는 것만으로 이 책은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겨보았다. 나의 가족이었던 그 개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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