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론이 그렇게 욕 먹을 일인가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현 정부의 첫번째 위기가 온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 발표된 7월 ‘고용 쇼크’ 자료를 바탕으로 언론과 야당은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이 되든 말든, 결국 필부필부의 최대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막연히 추측만 할 수 있었던 사안이 숫자로 뚜렷하게 제시되는 순간 자신의 추정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이러한 확신은 눈과 귀를 조금 더 닫히게 만들고 주장하는 목소리에는 힘을 실어준다. 사실 숫자가 나온 순간부터 본격적인 검증과 고민이 시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 정부의 정책 중 요즘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은 소위 소득주도 성장론이라고 부르는, 대통령 취임 후 주요한 경제정책으로 추진되어온 성장방식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그 이름도 생소한 방식의 경제 성장론이기 때문에 도입 당시부터 말이 많았고,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정책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현재 이 소득주도 성장론을 기반으로 행해진 주요한 정책으로 크게 세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그리고 재정정책의 확대를 통한 보조금 지급이 그것이다.

이 중 최저임금 인상이 가장 큰 저항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비판의 근거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자영업이라는 제3의 영역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은 대부분 일용 근로자(1개월 미만의 일일 단위 계약 노동자), 혹은 임시 근로자(1개월 이상 1년 미안의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최저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 이들 일용 근로자, 혹은 임시 근로자를 고용하는 영세한 자영업자의 비용이 상승하여 고용률이 오히려 하락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파산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비판의 두번째 근거는 내부자-외부자 이론 등에 근거한 실업률 상승에 대한 기여도 부분이다. 즉 비판자들은 최저임금의 상승은 기 고용된 근로자의 임금을 증가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구직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여 실업률을 오히려 상승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의 세번째 근거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수출에 비해 내수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경제상황에서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도,소매업 및 숙박, 판매업 등의 경제지표를 세밀히 관찰하지 않고 노동계측의 의견만을 받아들여 인상의 폭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세 비판 모두 일견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지만, 최저임금만이 최근 고용 쇼크의 유일한 근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또한 희박해보인다. 먼저 내수 시장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특정 산업 내 존재하는 가격 경직성을 고려해야 한다. 코인 노래방을 생각해보자. 한 곡 당 보통 500원의 요금을 받는다. 임대료가 비싼 곳은 1,000원을 받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 곡 당 500원을 받는 가게에서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요금을 한 곡 당 1,000원으로 인상할 수는 없다. ‘메뉴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은 근처 노래방 가격은 물론, 코인 노래방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가격들이 일반적으로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심리를 최소화시키며 기존 고객을 계속 유치할 수 있다. 최저임금의 부정적 충격을 상쇄할 정도의 가격인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이 가격 상승은 당연히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보는 근로소득자의 소비 증가를 필요로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내수가 살아나고, 살아난 내수를 기반으로 가격이 상승하여 국가 전체적인 소비자물가상승률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이게 소득주도 성장론의 핵심이다)를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현재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다음으로, 경기변동 상 국면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중 어느 쪽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구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경기흐름이 호황기에서 침체기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를 여러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정 대기업의 특정 수출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그 자체로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부터 그 특정 품목의 경기조차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소비자물가에서는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수요측면의 상승압력을 발견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유로존 간 통상마찰로 인해 신흥국의 ‘발작(tantrum)’이 발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터키가 무너지고 있는데, 이정도 덩치의 국가들의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현상은 가벼운 감기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은 금리 동조화를 시킬 수 없을 정도로 국내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내외부에서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즉, 이미 한국의 경기가 올해 초부터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면, 고용에 영향을 주는 주된 요인은 최저임금이라기 보다는 경기변동 그 자체일 가능성이 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고용이 되지 않는다. 물론 최저임금이 복합적으로 고용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추정조차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마치 영세 자영업자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마냥 절대악으로 비춰지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은 소득의 인위적 성장을 통해 성장을 꾀하는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최저 생계 기준’을 상징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서민의 삶의 질을 최소한으로 보호하려는 사회복지정책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즉, 현 정부는 경제와는 별개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이를 ‘숫자’로 확실하게 보장해주려는 정책적 움직임이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현실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국가 경제활동이라는 게임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과론적 평등주의 정책이라기 보다는 게임의 규칙을 재설정하는 쪽에 가깝다. 이제 모든 플레이어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 아래에서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표를 다시 찾아나서야 한다. 기업은 근로자의 최저임금과 최대근무시간을 보장해주는 한도 내에서 이익을 최대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컴퓨터를 끄고 근무를 시키거나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이익 극대화를 성취할 수 없다. 당장은 힘들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나은 기술을 발전시키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생산성 향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가 경쟁력 확보의 원천이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위의 두 정책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중 다른 한 축인 ‘혁신성장론’으로 귀결된다.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던져 주었으니,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내자는게 혁신성장론이다. 기업들에게 더 높은 경쟁력을 요구하되, ‘더 높은 경쟁력’은 ‘인건비 절감’이 아닌 ‘생산성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혁신성장론의 핵심 논리다. 정부는 이를 위해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재정정책을 통해 지속적인 기술 및 생태계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 이제 관건은 과연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국가 경쟁력 확보를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느냐이다. 만약 한국의 최근 경제상황을 소득주도 성장론과 결부시켜 비판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비판의 초점을 재정정책 쪽에 맞추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소득주도 성장론을 기반으로 한 약 세 개의 주된 정책 중 가장 비효율적으로, 철학 없이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재정정책을 통한 보조금 지급이기 때문이다. 이 보조급 지급은 ‘원 샷’ 정책에 가까워보인다.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 구직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0에 가깝다. 그들은 용돈 등 생계비로 이 보조금을 사용할 것이고, 그렇게 세금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최저 생계비 수준에 머물고 있는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 용돈 챙겨드리는 정도일 뿐, 이들이 이 돈을 생산적으로 다른 일에 쓸 확률은 0에 가깝다. 중소기업에 지급하는 고용 보조금도 2년, 혹은 4년 내의 단기적인 고용효과만이 있을 뿐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이 고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낭비되는 세금은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 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하청 관계를 청산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스타트업 기업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원을 함으로써 젊은 기업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보다 창의적인 모험에 뛰어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학이 단기 실적에 얽메이거나 연구비 수주에 목메지 않고 연구실 안에서 고유한 원천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를 확보해주어야 한다. 일개 기업이 수출확로를 뚫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국가가 나서서 큰 판에서 해결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확대 재정정책, 혹은 재정적자 정책이다.

결국, 현 정부의 가장 큰 패착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은 현 정부의 철학을 대표하는 주요한 정책으로 포기하지 말고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한계 기업이 있다면 이들을 억지로 되살려 ‘좀비 기업’으로 만들지 말고, 재빠르게 청산하고 업종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자가 최소한으로 누려야 하는 인간다움을 보장해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 역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퇴근 후 극장에 가고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 정도는 근로자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삶의 질이다. 오히려 이 제도를 편법적으로 악용하려 하는 일부 기업을 보다 강력하게 단속하여 그 어떤 상황에서도 더이상 일을 시킬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근로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고 더 적게 부려 먹어야 해서 울상을 짓는 기업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많다는 것을 신속하게 깨달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세수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국고로 흘러 들어오는 세수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재정적자를 실현하되,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실시되어야 하지, 이 세금을 고용창출이나 보조금 지급 등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이건 게임의 방향을 정부가 정해버리겠다는 말과 다름 없는 것으로, 오히려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줄 수 있다. 일한 만큼 월급을 주고 받되, 일하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보자, 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책상에 앉는 순간 일에만 집중하되, 정해진 시간 외에는 업무에 대해서는 언급 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다는 한국인의 명성이 무색해지는 지표 중 하나다. 어쩌면 우리가 ‘근면성실함’이라는 자부심에 취해서 현실을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월급루팡’이 더이상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상징이 되는 날이 온다면, 한국의 생산성도 다시 세계적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고, 경제성장률도 3%대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의 경제상황도 빠르게 호황기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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