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ie Shane: Any Other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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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쉐인(Jackie Shane)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누메로 레코드에서 나온 복각판 [Any Other Way]의 발매소식을 통해서였다. 그 전까지 이런 아티스트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부터 잊혀진 음악가를 발견해서 새롭게 조명받게 만드는 미국 음악산업의 마케팅 기법이 참 부럽기도 하다) 1971년 토론토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진 뒤 그녀는 ‘완전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다. 2006년 음악연구가 빌 먼슨(Bill Munson)이 재키 쉐인의 트럼펫 연주자였던 프랭크 모틀리(Frank Motley)로부터 그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아 직접 통화에 성공하기 전까지, 음악계에서 재키 쉐인은 사자(死者)로 기억됐다. 누메로 레코드에서 발매된 [Any Other Way]은 재키 쉐인이 발매한 여섯장의 7인치 음반과 공연 실황에서 뽑은 노래 25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가로서 넘치는 끼와 폭발적인 에너지, 음악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열정,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펑크-소울 음악과 끈적한 블루스 음악이 한가득 담겨 있다. 1960년대 토론토와 보스턴 지역의 인디 R&B 씬에 대한 흔적을 찾고 싶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료이기도 하다. 또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흑인 여성 음악가가 백인 중심의 타지에 뿌리를 내리고 인정을 받기까지 거쳐야 했던 많은 과정들을 따라가다보면 재키 쉐인이라는 인물이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캐나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자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198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이 재키 쉐인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숫자로 정리된 그녀의 커리어는 단촐하지만, 그녀의 삶은 영화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강렬하다. 그녀는 1940년 내쉬빌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는데, 네살 무렵부터 여자아이 옷을 입고 노는 것을 즐겼고 여섯살 무렵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운명이 어느 정도 정해진 셈이다. 1947년 조부모가 사망한 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오하이오로 이주했지만 열살 때 다시 내쉬빌로 돌아왔고, 그곳에 있는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스펠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녀의 첫번째 우상은 냇 킹 콜이었다. 13살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러한 그녀를 인정하고 지지했다.

여성 음악가로서 재키 쉐인의 커리어는 십대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동네 근처에 있는 펍에서 드러머로 채용되어 정기적인 공연을 가지기 시작한 그녀는 곧 주목을 받아 엑셀로/내쉬보로(Excello/Nashboro) 스튜디오 밴드의 정규 멤버로 채용되었고, 자신의 밴드 라벨 앤 먼데이(Lavelle and Monday)를 이끌어나갔다.

1958년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음악적 정착지를 찾던 그녀가 새롭게 발견한 곳은 캐나다의 몬트리얼이었다. 흑인들이 그나마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내쉬빌을 떠나 당시 백인과 가톨릭이 중심이 된 도시였던 몬트리얼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그녀와 그녀의 밴드가 한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머물던 호텔에 갑자기 갱스터 무리가 들이닥쳐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던 와중 갱스터 집단의 리더가 그만 재키 쉐인에게 꽂혀버렸다. 자신이 키워줄테니 이곳에 계속 머물러라, 만약 나를 떠난다면 당장 죽여버릴 것이다, 라고 그녀를 협박했다. 당시 19살이었던 그녀는 이것이 운명인갑다, 싶어 그곳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갱스터 두목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음악활동을 이어나갔고, 시내 다운타운의 한 클럽에서 프랭크 모틀리를 만나 그녀 커리어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밴드를 얻었다. 모틀리는 디지 길레스피에게서 트럼펫을 사사했다. 쉐인과 모틀리는 1959년부터 몬트리얼의 여러 클럽을 돌며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청중은 보통 200명, 혹은 300명 내외였다. 그때까지 쉐인은 화장을 예쁘게 했지만 남성 정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당시에는 주로 미드-슬로우 템포의 블루스 넘버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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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토론토로 넘어와 조금 더 큰 규모의 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윌리엄 벨(William Bell)의 노래 “Any Other Way”를 처음으로 커버한 것도 1962년, 토론토에서였다. 이 노래에는 윌리엄 벨이 직접 쓴 가사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Tell her that I’m happy, tell her that I’m gay

쉐인은 가사 중 이부분이 좋아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는 Cookin’ 레코드에서 발매되었고, 보스턴과 토론토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토론토에는 R&B만을 다루는 라디오 방송국이 없었지만 “Any Other Way”는 지역 차트에서 2위까지 상승했다. 토론토는 이후 1971녀까지 쉐인과 모틀리가 실제로 거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그녀의 첫번째 전성기가 펼쳐졌다. 토론토와 보스턴 뉴욕에서 그녀가 커버한 노래들이 7인치 음반으로 발매되었고 빌보드에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남성 정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지만, 머리를 한껏 길렀고 하이힐도 신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는 토론토의 사파이어 터번(Saphire Tavern)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지게 되었는데, [Any Other Way]의 뒷부분을 채우는 라이브 실황도 바로 이곳에서 녹음되었다. 토론토 지역사회에서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하며 그녀의 정체성도 보다 확실히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한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마치 마이클 잭슨을 만난 것 같았다”며 기뻐했고, 그녀와 누군가가 데이트라도 하면 다음날 그 남자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많은 지역 음악가들이 그녀와 교류하는 것을 즐겼으며, 그녀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늘어놓았다. 재키 쉐인의 공연은 당시 토론토에서 하나의 중요한 문화적 구성요소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을 찾은 후부터 지속적으로 차별을 경험한 그녀지만 대외적으로 활발한 양성평등 운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그녀 역시 자신이 다르게 취급받는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공연장에서 종종 모놀로그를 길게 행하곤 했는데(누메로 레코드의 복각판에도 “Money”라는 제목의 트랙에서 그녀의 유쾌한 모놀로그를 경험할 수 있다), 그 중 상당부분이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근거림에 대한 그녀의 쿨한 반응과 마음다잡기에 할애되었다고 한다.

“당신들은 나랑 함께 여행을 해봐야 아, 예수가 재림했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엄청 몰려다닌다니까요. 그들은 제가 손을 잡아주고 축복을 내려줄거라는 것을 알죠. 영혼도 치료해주고요. 그러니까 나에게 돈을 좀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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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그녀는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새로운 집을 구했고, 이후 내쉬빌과 토론토, LA 등에서 공연을 하며 커리어를 마무리짓는다. 1971년의 대부분을 LA에서 보냈는데, 당시 그녀는 10년 넘게 계속된 공연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고 한다. 프랭크 모틀리는 여전히 토론토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모틀리는 그녀가 컴백하기를 바랬지만, 쉐인은 콩코드 터번(Concord Tavern)에서 단 한번의 공연을 더 행한 뒤 완전히 사라진다. 몇번의 공연이 더 약속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틀리는 공연 약속을 이행하라며 칼을 들고 쉐인을 위협했지만, 이번에는 몬트리얼에서 만난 갱스터 두목의 위협에 응했던 때와는 달리 초연하게 거절하고 뒤돌아섰다. LA에는 연인과 어머니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7년 그녀의 어머니 제시(Jessie)가 숨질 때까지 그녀 옆에서 조용히 삶을 이어나갔다.

2016년, 토론토 도심에 위치한 22층짜리 한 빌딩에 벽화가 그려졌다. 토론토의 음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곳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의 초상화였다. 글렌 굴드(Glenn Gould)와 B.B.킹(B.B. King)처럼 우리에게 잘 열려진 뮤지션들 사이 한가운데에 위치한 재키 쉐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제가 잊혀졌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군요. 제가 했던 공연들이 쓸모없는 것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고마움을 표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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