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기억들

  • 올해의 사람: 정지은

2016년말 정지은과 결혼하여 1년여를 함께 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년이었고, 가장 충만한 1년이었다. 아내로 인해 내 인생 최고의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라면 평생 지치지 않고, 패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겼다. 나에게도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인생의 방향 전체를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더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아내가 웃는 모습만으로도 기운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차상: 없음

  • 올해의 장소: 경상남도 창원시

태어난 후 창원을 최초로 방문했고, ‘창원의 사위’가 되었다. 나는 아마도 그곳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나갈 것이다.

아차상: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 올해의 선택: 이직 결정

2017년 2월 이직을 결정하였고 4월 현재의 직장으로 적을 옮겼다. 이후 세편의 논문을 게재하였고, 업무 과정에서 소중한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만약 내가 전직장에 계속 머물렀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물리적으로는 조금 더 풍족했을지 몰라도 마음의 가난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직장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좋은 징검다리 정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까지 프로페션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당시 이직 결정이 결정적인 방향 선회의 기회를 제공해준 것 같다.

아차상: 비트코인을 구입하지 않은 것

  • 올해의 식당: 오키나와 류쿠노우시

음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내 덕분에 미각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한해였다. 한해동안 맛있는 음식을 참 많이 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음식은 연말 오키나와 여행에서 등장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종류의 육식 중 최고였다. 음식을 먹으며 짜릿한 감동을 느끼는 체험을 할 줄은 몰랐다.

아차상: 포틀랜드 터스크(Tusk)

  • 올해의 햄버거: 청담동 쉑쉑버거

서울에서도 맛있는 햄버거를 찾아 다니며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한해였다. 청담동의 쉑쉑버거는 뉴욕에서 경험했던 그 맛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아서 반가웠다. 참고로 나는 파이브가이스 > 쉑쉑> 인앤아웃 순으로 좋아한다. 파이브가이스가 빨리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인들에게 칼로리만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아차상: 홍대앞 아이엠어버거

  • 올해의 책: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의 소설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등장인물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아름답고, 그녀의 문장 속에서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인물들의 삶의 결이 아름답다. 올해 초 읽은 이 책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소설을 만나지 못했다.

아차상: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 올해의 화장품: 이솝(Aesop)의 제라늄 리프 바디 클랜저, 레쥬비네이트 인텐시브 바디 밤

이솝의 제품을 끈질기게 써보고자 노력했던 한해였다. 결과적으로 스킨제품은 실패였고, 바디와 헤어 제품은 궁합이 제법 잘 맞았다. 샴푸는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지만 제품별 특징을 강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볼류마이징 샴푸라고 해서 정말 머리가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기 힘드니까.. 핸드워시는 그냥 아, 이솝 핸드워시구나, 하는 정도였고, 의외로 만족감이 높았던 분야는 바디워시와 바디 밤 쪽이었다. 향과 농도가 확연하게 구분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았다. 이솝의 바디제품을 사용하고 난 후 몸에서 발생하는 트러블이 줄어들었다.

아차상: 아내가 선물해준 아이브로우 펜슬

  • 올해의 음반: Big Thief의 [Capacity]

수프얀 스티븐스에게 [Carrie & Lowell]이 그의 음악커리어에서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면 빅 띠프는 그 변곡점을 커리어 초기에 맞이하는 행운을 잡았다. 그들 스스로 이룩한 성취의 결과물이기에 행운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 올해 나온 음반들 중 가장 완벽한 음반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답다. 음악은 엔지니어링이기 전에 감정의 문제이기에 나에게는 이 음반이 베스트다.

아차상: The National의 [Sleep Well Beast]

  • 올해의 커피: 리이슈의 브라질 카르모 에스테이트

좋은 커피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닌 한해였다. 그리고 한국의 소매상에서 로스팅되는 커피의 대부분이 모두 비슷한 산지로부터 비슷한 경로를 거쳐 도착한다는 씁슬한 사실을 확인한 한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좋은’ 커피의 대부분은 비슷한 맛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남동의 리이슈는 조금 다른 풍미의 커피를 제공한다. 그 중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원두가 하나 있었다. 사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내 필터드립이 유난히 성공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코와 입으로 커피가 전해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차원을 경험했다.

아차상: 여의도 스티머스에서 그동안 모은 쿠폰으로 공짜로 얻어 마신 필터드립 커피 한 잔

  • 올해의 골목: 태평동 일대 골목

처남의 집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골목이다.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거주환경을 목격했고, 부끄럽지만 충격을 받았다. 이후 다시 가보지 않았지만 그때 각인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지금도 그런 환경에서 많은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 머리의 한쪽이 지긋이 눌려온다.

아차상: 금호역부터 금남시장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장터길

  • 올해의 영화: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압도적이었고, 황홀했다.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를 목격했다.

아차상: 조던 필레 감독의 [겟아웃]

  • 올해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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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상: 아래와 같다(영상인데 캡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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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의 하루: 11월 11일

창원 부모님을 모시고 효자동에서 점심을 먹고 청와대와 경복궁을 구경한 후 63빌딩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금호동 집으로 돌아와 주무실 자리를 펴드렸다. 뭉클함에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순간이 많이도 스쳐지나갔다. 나의 한해를 요약한 하루처럼 느껴졌다. 2017년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이 그 하루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아차상: 8월 19일

  • 올해의 TV쇼: [비밀의 숲]

황시목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차상: [프로듀스 101 시즌2]

  • 올해의 하늘: 6월 4일

아차상: 7월 29일과 8월 4일

  • 올해의 성당: 옥수동 성당

옥수동 성당의 평범한 주일 교중미사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의 첫미사를 우연히 함께 할 수 있었다. 먼길을 돌고 돌아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이 늙은 홀아버지를 꼭 안아주던 장면에서 왈칵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차상: 명동성당

  • 올해의 지름: 엘지 트롬 건조기

우리 부부의 삶은 건조기를 구입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세탁기가 여성을 주방에서 일정 부분 해방시켰다면, 건조기는 현대인의 삶을 한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우리의 다음 목표는 엘지 트롬 스타일러로 향해있다. 

아차상: 마르니 민소매 원피스

  • 올해의 여행: 포틀랜드

우리 부부는 아직 정착할 곳을 찾고 있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견학이기도 하다. 포틀랜드 여행 후 우리는 이 곳을 후보지로 올렸다. 특히 캐논비치는 잊지 못할 감정을 선사해주었다. 기분이 내킬 때 차를 끌고 캐논비치를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면 오래 살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차상: 제주도

  • 올해의 여드름: 10월부터 11월까지 오른쪽 눈 옆에 난 여드름

올해는 예년에 비해 유난히 많은 여드름이 난 한해였다. 아마도 새로 옮긴 직장의 환경이 피부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한달 넘게 아주 크게 눈 옆에 자리잡은 여드름이 기억에 남는다. 쉽게 터지지 않으면서 많이 부풀어올라 눈을 깜빡거리는데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흉터가 남아있다. 인생에 남을만큼 대단한 여드름이었다.

아차상: 양 관자놀이에 만성적으로 자리잡은 작은 여드름 모음들

  • 올해의 실수: 결국 참지 못하고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한마디 한 것

아차상: 후진하다가 화물차량과 충돌한 것

4 thoughts on “2017년의 기억들

  1. 워드프레스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요. 우연히 글을 보는데 끝까지 다 읽었네요 ㅎㅎ 저는 2017년 한해를 돌아보니 아무 생각도 안나네요. 이렇게 정리라도 해두면 훗날 기억날까 싶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 아니라 이렇게 1년에 한번이라도 정리를 해두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다보니 재밌기도 하고요 ㅎ

  2. 스타일러는 보류인가요???? (정장을 자주 입으시는 분에게는 좋을 것 같습니다만..치명적인 단점은 실크 의류는 사용불가라고 하네요…)

    • 스타일러.. 평수 넓혀서 들어갈 때 반드시 영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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